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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눈물보단 시럽?

송주희 문화부 차장


요즘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이 하나 있다. 중견 배우 송승환이 원로 예술인들을 만나 그들의 연기 인생을 돌아보는 ‘원더풀 라이프’다. 그동안 이순재·강부자·김영옥·박인환·고두심 등 무대와 TV를 오가며 활약하는 연기 장인들이 출연했는데 이들의 신인 시절 이야기부터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중 유독 마음에 와 닿았던 회차는 배우 오현경 편이다. 지난 1987~1993년 방영된 드라마 ‘TV 손자병법’으로 대중적 인기를 끈 그는 놀랍게도 지금껏 TV 광고를 찍은 적이 없단다. 드라마의 흥행으로 여러 편의 광고 제의가 들어왔지만 그는 모두 거절했다. 스스로를 상업화하지 않고 예술 활동에 매진하겠다고 사회에 발을 내디디며 스스로 세운 원칙 때문이었다. 아파트 서너 채는 샀을 법한 고액의 광고들을 내리 거절하며 관계자를 돌려보내자 점잖던 스태프가 “바보 같은 놈”이라며 타박했을 정도라고 한다. 연기의 본질을 해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자신이 할 수 있는, 그러나 쉽지 않은 방법으로 평생 실천해왔다는 사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요즘 잘나간다는 TV 드라마 몇 편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하리만큼 우직했던 그가 떠오른다. 배우의 광고 출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온갖 협찬 상품으로 도배된 영상을 보다 보면 드라마가 한 시간짜리 CF 모음집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에 걸맞지 않게 ‘직접적’인 간접광고(PPL)는 스토리의 흐름을 끊고 열연하는 배우를 일순간 특정 상품의 광고 모델로 둔갑시킨다. 최근 한 드라마에서는 출소한 엄마와 딸이 카페에서 상봉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애틋함이 넘쳐야 할 순간 주인공이 불쑥 이런 대사를 내뱉는다. “엄마도 빙수 좋아하는데, 여기 빙수는 이렇게 먹어야 해.”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인터넷에는 ‘연기력이 돋보인 먹방 덕에 OO빙수 판매량이 급증했다’는 홍보성 기사가 쏟아졌다. 얼마 전 종영한 또 다른 드라마는 마지막 회에 그동안 못 내보낸 PPL을 ‘창고 대방출’하듯 등장시키고 광고 카피까지 그대로 대사에 넣어 ‘PPL 대행 서비스’라는 조롱을 받았다.



드라마 제작비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이를 충당하기 위한 광고가 불가피한 측면도 분명 있다. 문제는 드라마의 핵심인 서사를 침범하면서까지 상품 홍보가 이뤄지고 있다는 데 있다. 맥락 없이 등장해 ‘내가 제작비 냈다’고 말하는 듯한 PPL을 보며 시청자는 그저 “내가 줄 거 아니니 참자” “싫으면 보지 말자” 하고 지나쳐야 할까.

눈물 흘리는 배우의 얼굴 대신 시럽 흘러내리는 빙수가 클로즈업되는 현실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자신의 연기와 작품을 지키기 위해 상품에는 얼굴을 내주지 않았던 노(老)배우가 이 장면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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