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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미술진흥법 실효성을 위한 조건들

김보름 세종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김보름 세종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얼마 전 미술진흥법 제정을 위한 정부 주최 토론회가 열렸다. 그동안 정책 면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온 미술 분야에 대한 유의미한 시도라고 생각하지만 법안의 내용에 있어서는 몇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첫째, 법안이 명칭과 달리 창작과 유통 일부만 다룰 뿐 미술 생태계의 핵심인 전시와 향유 측면에 대해서는 소홀하다. 특히 전시 관련 핵심 기관인 미술관에 관한 내용이 빠져 있다. 국내 미술관, 특히 사립미술관은 창립자 세대의 은퇴와 더불어 큰 위기를 맞고 있음에도 법안에는 이에 대한 지원이나 상속·기부·법인화에 대한 제도 개선 등의 내용이 빠졌다. 나아가 최근 부각하는 온라인이나 가상공간을 통한 전시 등 새로운 전시 방향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지 않다.

둘째, 창작 면에서 작가들의 추급권을 인정한 것은 진일보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추급권이란 미술 작가가 작품을 최초로 판매한 후 재판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 중 일부를 분배받는 권리로, 미술 작가의 권리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하는 제도 중 하나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0년대 중반 이래 논의가 시작됐으나 제도화 노력에 게을렀다. 이제라도 추급권을 도입한 나라들의 법령과 관련 성과 등을 구체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저작권법 등 관련 법 체계와의 연계성 검토 및 1차 시장에서의 거래 정보 확보 방법 등 관련 기반 조성이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추급권이 상징적 의미로만 존재할 뿐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셋째, 미술품 감정제도 문제다. 미술품 감정 시장의 발전을 위해 시급한 것은 정부가 주체가 된 감정 센터 운영이나 진위 감정이 아니다. 정부가 우선해야 할 일은 감정의 신뢰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한 표준 감정서 양식과 절차를 만들고, 동시에 조세 및 금융 관련 부처와 협의해 미술품 시가 감정에 대한 사회적 수요를 개발하고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제쳐둔 채 현재 안처럼 정부가 진품을 법으로 보장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미술 시장이 커질수록 진위 논쟁도 많아질 텐데 그럴 때마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혹은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넷째, 미술 은행 관련 사업의 법인화에 앞서 민간의 미술품 대여 사업과 중복성 문제를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건축물에 대한 미술 작품의 설치 대신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출연되는 기금의 활용 등에 대해서도 사업 주체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가 나서서 시장을 조성하고 이끌어간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이다. 이제는 지방과 민간에 역할을 넘겨야 한다. 정부에 의존하지 않는 자율적 생태계의 구축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칫 공공 의존도만 심화할 우려가 있다. 근본적 검토 없이 굳이 문화예술진흥법이나 관련 지원 기관들을 두고 새로 법을 제정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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