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영화 ‘기생충’에서 등장했던 공간이 실제처럼 나타났다. 가상현실(VR) 체험에 필요한 헤드마운티드디스플레이(HMD)를 머리에 쓰자마자 직선으로 광선이 비치는 것 같은 가상 공간이 펼쳐지더니, 이내 극중 동훈(이선균 분)이 살던 대저택으로 안내한다. 넓은 거실 앞 정원에 설치된 텐트도 그대로다. 돌연 날이 어두워지고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천장이 열리고 집이 해체된다. 몸이 텐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지나가자 눈 앞으로 영화 속 기택(송강호 분) 가족이 빗속을 걸어 내려가던 계단이 보인다. 무중력 상태처럼 떠 있다가 계단의 지면으로 안착하는 것과 동시에 주변 공간은 물에 잠긴 기택의 반지하 방으로 바뀐다. 물 속으로 담배 속 돈뭉치, 금메달 등이 보이더니 갑자기 나타난 커다란 돌이 거대한 바윗덩이가 되어 짓누른다. 극중 기우(최우식 분)가 애지중지하던 산수경석이다. 공간은 다시 전등이 모르스 부호로 깜박이는 대저택의 지하실. 처음 마주한 가상공간에서 영상은 끝이 난다. HMD를 벗을 때까지 불과 4분30초가 흘러 있었다.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이 VR 작품은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6일(현지시간) 막을 올린 ‘한국 : 입체적 상상(Korea : Cubically Imagined)’ 전시회의 출품작 중 하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유엔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국제 창의경제의 해’ 지정을 기념하고 코로나19 이후 한국의 상상력을 세계인들과 공유하기 위해 마련한 전시다. 에르네스토 오토네 유네스코 문화부문 사무총장보는 “K팝, 한국 영화 등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적 성공은 대한민국 정부가 편 실감콘텐츠 산업 정책의 성과를 직접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출품작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영화 ‘기생충’과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콘서트를 VR로 재현한 작품들이다. 콘진원은 전시회 개최가 최종 결정된 후 한류 지식재산(IP)을 활용한 실감콘텐츠를 전면에 내세우기로 했고, 그 대상으로 ‘기생충’과 BTS 공연을 낙점했다. BTS의 소속사 빅히트 뮤직은 지난해 온라인으로 열린 ‘맵오브더소울 원(Map Of The Soul ON:E)’ 콘서트 실황 중 ‘쩔어’와 ‘DNA’의 무대를 3면 입체의 VR 실감콘텐츠로 재구성해서 전시장에서 공개했다.
전시에 앞서 언론에 미리 공개된 ‘기생충’ VR을 구범석 감독은 지난달 24일 취재진과 만나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게 중요했다”며 “짧은 시간에 영화 속 계층 이동의 의미, 공간과 사물의 메타포를 재조합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VR은 원작 속 등장인물이 나오지 않는 대신 영화 속 디테일과 메타포에 집중했다. 영상 속에서 시각적으로 공간이 분해되는 것으로 계층이동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계층 상승의 욕망을 상징하는 산수경석을 거대하게 보여 산맥처럼 짓누르는 듯한 느낌으로 연출했다. VR 영상 초반 가상공간에 있는 것 같은 연출에도 의미를 담았다. 봉준호 감독은 6월 시사회에서 콘텐츠를 체험한 후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완전 새로운 체험”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 ‘왕의 행차, 백성과 함께하다’ △디스트릭트 ‘플라워’, ‘웨이브’, ‘비치’ △비브스튜디오스의 VR 영화 ‘더 브레이브 뉴 월드’ 등도 함께 선보였다. 한글을 매체예술로 표현한 태싯그룹의 ‘모르스 쿵쿵’(Morse ㅋung ㅋung), 관객과 가상현실 콘텐츠로 교감하는 ‘허수아비’, BTS 안무를 재해석한 ‘비욘드 더 신’도 관람객을 기다린다. 전시는 16일까지 열리며, 21일부터는 주프랑스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기생충 등 일부 실감 콘텐츠를 3주 동안 전시한다. 16일부터는 온라인 전시관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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