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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비틀쥬스' 하품 한 번 안했는데 150분이 후딱 지나갔다




손짓하기만 하면 불이 번쩍번쩍 하고, 괴물이 튀어나와 연기를 내뿜고, 집이 앞뒤로 움직이고, 사람이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초대형 쇼 뮤지컬이 현재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은 ‘비틀쥬스’는 하품 한 번 나오지 않는 150분을 선사하며 관객을 환상 속 유령세계로 안내한다.

‘비틀쥬스’는 팀 버튼 감독의 기괴한(?) 영화를 기반으로 만든 뮤지컬로, 이승과 저승 사이에 끼어버린 유령 아닌 유령 비틀쥬스와 그를 볼 수 있는 소녀 리디아와 주변 인물들이 벌이는 기괴한(?) 에피소드를 무대에 구현한 작품이다.

이미 죽은 만큼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한 채 우울증에만 빠져 사는 비틀쥬스. 낡은 집에 살고 있는 젊은 부부 바바라와 아담이 갑작스럽게 죽게 되자 그는 저승 가는 방법이 담긴 책을 빼돌려 자신처럼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로 만들어버린다. 비틀쥬스가 원하는건 바바라와 아담이 자신들의 집에 들어오는 새 주인을 위협해 자신의 이름을 세 번 부르게 만드는 것. 그렇게만 하면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돼 더 이상 외롭지 않아도 된다. 물론 바바라와 아담도 자신들의 집을 고스란히 지킬 수 있게 되고.

이 완벽한 계략은 시작부터 비틀린다. 버려진 집의 새 주인이 된 리디아가 유령을 보게 되면서 그를 위협하려던 바바라와 아담이 오히려 쫓기다 친해지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결국 직접 리디아 앞에 나타난 비틀쥬스는 “세 번만 내 이름을 불러달라”며 교묘하게 꾀어내지만 이 소녀 절대 만만치 않다. ‘얼마 전 돌아가신 엄마를 찾아달라’는데….

여기에 낡은 집을 리모델링해 크게 한탕을 노리는 부동산 사업가이자 리디아의 엄격한 아버지 찰스, 한쉬도 입을 쉬지 않는 긍정 자기계발 라이프코치 델리아까지 한데 모이게 되면 이야기의 흐름은 ‘펜트하우스’ 부럽지 않다. 어디로 튈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고 추측하다 ‘아 이렇게 보는게 아니구나’ 생각하는 순간 진짜 재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작품은 이야기를 단순화시킨 대신 화려함에 치중한다. 주요 무대가 되는 ‘집’ 세트부터 주인이 바뀔 때마다 순식간에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뀐다. 바바라와 아담의 집, 찰스와 델리아 리디아의 집, 비틀쥬스가 장악한 집은 저마다의 특징을 명확하게 설명한다. 아울러 오리지널 버전으로 공수한 소품들, 특히 뮤지컬 ‘라이온 킹’의 퍼펫(인형) 디자이너가 만든 래 벌레, 쪼그라든 머리의 유령, 거대한 비틀쥬스 등의 퍼펫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화려함은 음악과 가사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각종 넘버들은 전통적인 뮤지컬 음악을 기반으로 하지만 서커스, 팝 발라드, 라틴, 힙합, 칼립소, 록, 가스펠 등 흥이 날 수 있는 장르들을 다양하게 엮어 시종일관 들뜬 분위기를 유지한다. 특히 감정 전달이 목적인 전통적 킬링 넘버들을 최소화하고, 등장인물이 주고받는 대화 중심으로 구성한 주요 넘버들은 관객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그중에서도 비틀쥬스가 자신을 여럿으로 복제해 집에 찾아오는 사람마다 놀라게 하는 넘버 ‘That Beautiful Sound’는 영상을 검색해서라도 찾아볼만한 재미가 있다.



초반부터 관객에게 말을 걸거나 “이 쇼는 죽여주는 쇼”라는 등 작품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비틀쥬스의 행동은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는 듯한 재미를 선사한다. 한국 초연에다 분석하고 표현해내기 어려운 역할인 만큼 베테랑 중에 베테랑인 유준상과 정성화의 캐스팅은 적확했다.

리디아를 연기한 홍나현과 장민제는 제작발표회 당시부터 국내 최대규모의 극장과 대극장 주연이라는 부담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 보였다. 이날 무대에 오른 장민제는 기대처럼 귀신들린 듯한 연기와 노래로 끝까지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특유의 백치미로 이야기가 늘어지는 순간마다 분위기를 환기시켜야 하는 리디아를 연기한 신영숙의 관록 넘치는 발랄함은 그저 명불허전.

집 하나를 두고 내집 니집 싸우는 유령과 사람들의 유치하지만 화려한 모습을 넋 놓고 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슬픔을 극복하고 자신의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리디아의 얼굴과 마주한다. 비틀쥬스의 외로움을 비웃으며 신나게 떠들고 즐겼는데, 끝나고 보면 진한 사랑과 가족애가 남는 독특한 작품이다. 그 독특한 매력이 코로나19의 재확산을 뚫고 흥행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또 다음 공연도 가늠할 수 있을지 어느 나라보다도 까다로운 우리 관객들의 평가가 기대된다.

8월 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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