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사망을 계기로 이들 노동자들에게 건물 준공 년도 외우기 등의 부당 지시가 내려진 사실이 드러나 공분이 높은 가운데, 사건의 주동자로 밝혀진 안전관리 팀장이 수년 전 쓴 기숙사 운영과 관련한 석사 학위 논문을 작성했던 사실이 알려졌다. BTL(임대형 민자 사업)기숙사의 사업성·효율성 등을 분석한 이 논문에는 A씨가 청소를 맡았던 재정기숙사(대학 재정을 투입해 설립한 기숙사)가 비용 대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들어가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관리감독 강화, 체계적 교육 훈련 등이 제시돼 부당 지시가 나온 배경을 짐작하게 한다.
10일 서울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사태의 중심에 선 B 안전 관리 팀장은 지난 2015년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공공서비스의 민간투자사업효과 : 서울대학교 BTL 학생생활관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써 석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에는 서울대 BTL기숙사의 운영 효율성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향후 BTL기숙사의 운영 개선점을 제시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숨진 직원 담당했던 악명 높은 925동…논문엔 ‘업무 강도 다른 곳과 비슷’
BTL기숙사의 효율성과 장점이 강조되는 과정에서 비교 대상이 된 재정기숙사는 비용 대비 학생 만족도가 낮은 곳으로 평가돼 있다. 논문에는 총 20개 항목으로 각각 기숙사의 서비스와 시설 만족도를 평가한 이용자 만족도 조사가 나온다. 재정기숙사는 항목 당 8.75점을 기록해 9.07점을 받은 BTL기숙사보다 만족도가 낮았다.
A씨가 청소를 담당한 925동 기숙사 역시 재정기숙사였다. 그 중에서도 이동은 면적이 넓은 편에 속하고 승강기도 없어 청소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노동 강도가 높은 곳으로 꼽혔다. B팀장은 서울대 전체 기숙사를 맡고 있었지만 실무적으로 보면 그가 주로 관여한 곳은 재정기숙사였다. 정성훈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서울대시설 분회장은 “전체 기숙사에 대해 안전 관리 팀장으로 있었지만 BTL기숙사에 대해서는 거의 관여 안하고 재정생활관 운영에 대해 업무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925동이 유난히 업무 강도가 높았다는 당사자들의 설명과 달리 논문에는 “재정기숙사는 승강기가 없어 3층까지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청소를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면서도 “층은 BTL기숙사에 비해 낮아 결국 업무 강도는 비슷하다“고 서술돼 있다. B팀장 부임 직후 A씨가 감당해야 할 업무량은 증가했다. 전에 없던 창 틀과 창문 외부 닦기, 제초 등 업무가 추가됐고 불시 검열도 생겼다. 설상가상 코로나19 여파도 더해졌다. 외출 빈도가 감소한 학생들이 음식을 배달하는 경우가 늘면서 하루에 100L 용량의 봉투에 가득 담긴 쓰레기를 승강기 없이 하루 6~7번 들고 내려야 했던다. A씨는 주위에 늘 손바닥과 손목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논문에는 재정기숙사가 BTL기숙사에 비해 투입되는 인건비 등 고정 비용이 높다고 분석돼 있다. 재정기숙사 담당 직원들의 인당 인건비가 BTL기숙사에 비해 높으며 그 간극도 점점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또 재정기숙사 직원 개개인에 할당된 미화 면적도 BTL기숙사보다 넓다고 돼 있다. 즉 재정기숙사 담당 청소노동자들이 적은 면적을 담당하면서도 임금은 많이 받아 재정기숙사의 경제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 것이다.
‘관리감독·교육훈련 부족’이 낮은 만족도 원인?…부당 지시 씨앗 됐나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기숙사 운영 방식에 대한 개선 방향도 제시했다. 그 중에는 청소노동자들을 향해 부당 지시가 내려진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도 등장한다. B팀장은 “서비스 운영 실적 및 만족도 문항의 내용은 청소와 시설 업무에의 전문성에 대한 만족도라 할 수 있다”며 “(재정기숙사의) 만족도가 전반적으로 낮게 나타난 것은 업무에 대한 관리감독 소홀이나 체계적인 교육 훈련의 부재 등 원인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B팀장이 청소 회의를 열면서 드레스코드를 맞추라고 지시 내린 것이나 기숙사 건물의 준공 년도를 맞추라는 등 시험을 낸 것도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논문 막바지에는 ‘공공의 영역이 민간의 영역보다 비능률적이고 경직되어 있다’며 “민간의 운영 방식이나 제도를 벤치마킹하여 공공의 영역에 도입한다면 공공의 영역이 더욱 발전할 것으로 판단된다”는 내용도 나온다.
청소 회의에서 별안간 쪽지 시험…드레스코드 안맞다고 감점까지
지난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A씨의 가족 및 동료, 민주노총 일반노조는 학교 측에 재발 방지와 공동 조사단 구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날 동료들의 발언을 통해 지난달 초 부임한 B팀장이 직원들에게 내려온 그간의 지시 사항이 드러났다. B팀장은 주마다 청소 회의를 개최하면서 참가자들에게 드레스코드를 맞추라는 주문을 내렸다. 한 청소노동자는 “근무 중이라 최대한 깔끔하게만 입고 갔는데 원하는 대로 입고 오지 않았다고, 회의에 펜과 수첩을 들고 오지 않았다고 감점을 했다”고 밝혔다. 또 회의 시간, 사전 예고 없이 시험을 치르게 했다. 채점 결과가 동료들 앞에 공개돼 일부 노동자들은 수치심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시험에는 기숙사 건물 준공 년도, 조직이 만들어진 년도를 맞추는 문항 등이 출제됐다. B팀장은 점수가 낮은 사람에게 감점을 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편 서울대는 지난 8일 이 사건을 같은 대학 인권센터에 의뢰했다. B팀장은 인권센터의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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