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의 중심부, 어느 건물 안에서 근무하는 디자이너는 문득 바깥세상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각자의 장소와 공간에서 특별한 지금을 보내고 있을 그들과 만나 또 다른 미지의 장소와 공간을 탐험해보고자 합니다.
디자인 스튜디오 ‘바톤(BATON)’을 운영하고 있는 이아리 디자이너는 브랜딩을 포함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늘 작업하는 브랜드의 방향성에 집중하며, 나아가 ‘일과 건강한 삶’의 밸런스를 추구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한다. 친구와 함께 여성이 주체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비정기 원데이 클래스 ‘여가여배(여자가 가르치고 여자가 배운다)’를 운영하고 이를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작업실 이야기-바톤 터치
Q. 스튜디오 ‘바톤’의 시작이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바톤의 창업자는 디자이너인 저와 기획자와 개발자, 총 세 명입니다. 제가 과거에 광고대행사에서 근무하다가 퇴사 후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시기가 있었는데요.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고민을 나누다가 자연스레 함께 일하게 되었지요. 저는 원래 시각디자인과 출신의 광고대행사 아트디렉터였어요. 지금은 분야를 전향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광고에 대한 흥미가 있었다기보다는 광고홍보학과 친구와 친하게 지내면서 광고 공모전에 참여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광고 분야로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디자인 신에서 광고디자인이 핫하던 시기였거든요.
Q. 바톤의 업무 프로세스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요?
A. 초반에 1인이 각자 고생을 하게 되면 잘 풀어 나가는 게 쉽지 않죠. 저희는 각 포지션의 세 명이 함께 움직이니까 훨씬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지금은 거의 팀 체제로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브랜드 파트와 웹 파트로요. 전반적인 운영은 기획자가 함께 담당하고 있죠. 작년에 인사 쪽을 담당해 주시는 분을 섭외해서 더 조직을 시스템화하려고 합니다.
Q. 광고에서 브랜딩으로 이직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브랜드가 하는 이야기들을 디자인해보고 싶었어요. 광고디자인은 주로 브랜드의 끝단에서 디자이너가 작업을 한다는 특성을 가졌다면, 브랜딩은 디자이너가 오히려 처음부터 스토리라인까지 기획할 수 있다는 매력을 지니고 있죠. 즉, 광고는 브랜드의 히스토리와 철학을 바탕으로 전해야 하는 메시지를 통해 결과물을 디자인하게 되고, 브랜딩은 가장 윗단으로 올라가 그것들을 함께 설계하게 됩니다. 둘 다 경험해보니 개인적으로는 브랜딩이 좀 더 흥미롭더라고요.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분야를 바꾸게 되었어요. 허핑턴포스트 코리아가 한국에 론칭을 할 때 브랜딩 회사 BB&TT와 함께 그래픽 디자인 파트 담당자로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당시에 브랜딩을 하는 분들과 굉장히 재밌게 협업했던 기억이 납니다. 좀 더 브랜딩 쪽으로 강화시켜야겠다고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죠.
Q. ‘바톤’이라는 스튜디오 이름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A. 인상이 좋은 단어를 함께 선정하다가 누군가가 무심결에 “바톤 어때?” 라고 제안을 했어요. 바톤이 바톤터치를 통한 이어달리기의 의미도 있고, 저희 스튜디오 철학과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채택되었죠.
Q. 홍대에 작업실을 얻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작년까지만 해도 바톤은 상수에 있었어요. 동교동으로 이사 온 지는 5개월 정도 되었네요. 스튜디오가 홍대 앞으로 보금자리를 옮기게 된 이유는 단순히 저희 집과 가깝기 때문이에요. 홍대 일대가 과거에는 디자이너를 포함한 아티스트들을 대표하는 지역 중 하나였는데요. 점점 온라인 베이스로 활동하는 분들과 접점이 더 많아지면서 지리적 이점이 이제는 많이 흐릿해졌어요. 코로나 때문에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Q. 작업하다가 집중이 안 되거나 할 때 스튜디오 주변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이 있나요?
A. 저희는 10시 출근 5시 반 퇴근이에요. 보통의 근로시간보다 1시간 반이 적어요. 그렇기 때문에 늘 업무시간을 엄수하려고 애쓰죠. 론칭 직전에 예외적으로 야근을 하는 시간도 있지만 정해진 근로시간을 최대한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할 때 집중도가 엄청 커요. 바톤 사람들끼리 자주 하는 얘기 중 하나가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는 거예요.
Q. 지역의 다른 디자이너 단체나 모임에서 활동을 하는 것이 있나요?
A. ‘FDSC’라는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성 디자이너들이 함께 교류하며 서로를 돕는 소셜클럽인데요. 사실 최근에 합류하게 된 디자이너 중에도 FDSC 회원이 있어요. 정말 훌륭한 인재 풀인 셈이죠.
◇작업 이야기-이어달리기
Q. 바톤의 포트폴리오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매체별 브랜딩 작업이 주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브랜드의 개성을 표현할때 디자이너가 느끼는 차이 점이 뭘까요?
A. 최근에 금융 밀레니얼 세대들을 위한 경제생활 미디어 브랜드를 디자인했는데요. 인쇄물로 나오는 것은 명함 하나뿐이고 나머지 어플리케이션은 다 웹을 기반으로 하는 작업들이었어요. 주로 결과물로 나오는 것들이 온라인을 통해 보여지기 때문에 가변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작업했지요. USM라는 스위스 브랜드의 가구를 한국에 독점 수입하는 판매처와 함께 일할 때에는 브랜딩과 웹사이트를 통합적으로 작업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원래는 브랜딩 따로 웹 따로 의뢰가 들어왔었는데 점차 웹팀과 브랜딩팀이 함께 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그러다 보니 온라인 기반의 가변성을 점점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브랜딩 팀에서 짜놓은 가이드를 웹팀의 기획자와 디자이너, 개발자들이 어떻게 구현을 할지까지 함께 상의해서 진행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통합적 사고를 요하는 프로세스가 필요하죠. 또 오프라인 작업을 진행할 때에는 보통 물성이 있는 아웃풋을 내는 경우가 많은데 의도한 디자인이 잘 나왔을 때 느끼는 희열감이 분명히 있죠.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중간중간 온 오프라인 작업을 함께 진행할 때 리프레시가 되면서 상호 간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Q. 이아리 디자이너가 그리는 ‘여성의 얼굴’ 일러스트가 인상적입니다. 드로잉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또한 일러스트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A. 친구와 함께 운영하는 여성 운동 모임 ‘여가여배’의 톤 앤 매너를 제작하게 되었는데요. 일러스트로 매해 달라지는 종목을 그리는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나중에 이 작업을 보시고 영화제 측에서 연락을 주셨어요. 그전에는 좀 더 자유로운 인상이었다면 여성 영화제에 들어간 일러스트부터는 조금 더 인상이 강해지긴 했죠. 그걸 계기로 포스터가 오프닝을 맡으면서 예상치 못하게 꽤 많은 분들께서 좋아해 주셨어요. 제 일러스트가 굉장히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점에 있어서 공감을 많이 해주셨던 것 같고, 저 또한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타인이 함께 공감하는 지점이 분명히 있구나’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죠. 그래서 영화제가 막을 내리고 나서도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일러스트를 계속 진행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최근 그림을 그리면서 개인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특히 홍진경씨의 인터뷰를 보고 인상 깊어서 기록하고 있는데요. 여성의 얼굴을 빠르게 그리는 것이 시각적으로도 잘 읽혀야겠지만 말하고 있는 목소리와 메시지도 함께 담겼으면 해요.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앞으로 그림이 될 수도 있고 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Q. 독자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디자인 작업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최근에 했던 작업들이 항상 생생하잖아요. ‘UPPITY’의 브랜딩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 이유는 올해 처음 웹팀과 브랜드팀이 협업했던 첫 프로젝트였고요. 올해 처음 새롭게 합류한 디자이너의 첫 프로젝트이기도 하거든요. 어피티 대표님이 밀레니얼세대의 여성분인데요. 프로젝트 진행할 때 어떤 제안을 드리면 왜 좋은지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해 주시는 것뿐 아니라 매번 어떻게 진행하고 있다고 단계별 지점을 늘 공유해 주시는 것들이 좋았어요. 고객사와는 보통 갑과 을의 관계로 만나는데 그런 관계성을 떠나서 굉장히 서로 업무 궁합이 잘 맞았던 프로젝트로 기억에 남네요.
Q. 작업을 진행할때 주로 어떤것으로 부터 영감을 얻어 발전시키나요?
A. 마감을 떠올리면 생각이 잘 안 나던 아이디어도 막 떠오르고 그래요(웃음). 또 평소에 즐겨보던 책이나 가끔 가서 봤던 전시의 시각적 조합들이 켜켜이 쌓여있다가 은연중에 발현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좋은 디자이너가 되려면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양하게 본인의 흥미에 맞춰서 시야를 넓히는 것들이 좋은 것 같더라고요.
Q. 본인이 생각하는 디자이너로서의 강점이나 작업 노하우가 있을까요?
A. 이 질문에는 바로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친구가 저한테 ‘아빠손’이라는 별명을 붙여줬었는데요. 아시아의 빠른 손이라는 뜻이에요(웃음).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편이고 실행력이 굉장히 빠른 편이죠. 멀티도 잘 되고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주의가 산만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오버랩 되는 경우가 있는데 순간 작업별 전환이 빠르게 잘 되는 것 같아요.
Q. 그래픽 디자인 외에 관심 있는 다른 분야가 있나요??
A. ‘운동하는 것’과 ‘글 쓰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운동은 일상화된 지 약 5년 정도 되었어요. 몸을 쓰는 것이 이제는 체득되어 있는 것 같네요. 좋아하는 운동을 바탕으로 ‘여가여배’를 함께 운영하는 친구와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마감을 잘 지킨다면 올 하반기에 책이 나오게 될 예정입니다. 올해 가장 큰 목표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번에 책을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된 것이 ‘글쓰기’인데요. 사실 원래는 일기도 잘 안 썼어요(웃음).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글로 잘 정리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더라고요. 생각을 하고 기록을 하면서 저도 몰랐던 ‘언어화했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 나의 모습’들이 있어서 굉장히 의미 깊었죠. 앞으로도 계속 경험하면서 기록해야겠다고 생각 중입니다. 외부 발행이 되는 것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작업을 할 때도 콘셉트나 의미를 구체적으로 언어화하려고 하고 있어요. 디자이너는 시각적인 언어에 예민한 사람들인데 그것들을 언어화 시키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텍스트 작업을 꾸준히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앞으로의 이야기-함께 달리기
Q. 계속해서 스튜디오를 꾸준히 꾸려나갈 수 있는 바톤만의 비결은 무얼까요?
A. 바톤을 운영하는 세 명이 추구하는 방향성이나 삶에 대한 속도감이 다 달라요. 제가 가장 느린 편이죠. 만족형 인간이기 때문인데요. 앞을 먼저 내다보는 성향이 아니에요. ‘개 같은 사람’이거든요. 이 말은 예전에 다니던 광고대행사 TBWA의 박웅현 팀장님이 본인을 설명할 때 하셨던 말씀이에요. 개 같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진 모르겠지만 멍멍이들이 간식 먹으면 기쁘고 산책 다녀오면 행복하듯이 현재 누리고 있고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제 성향과 닿아있고 삶의 지표처럼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하하. 목표 지향형인 동료들이 항상 제가 따라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기다려줘요. 저는 결과적으로 이러한 바톤의 상황이 굉장히 만족스럽고요. 그 둘도 아마 제가 없었다면 이미 지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조율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은 분명 존재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관계인 것 같습니다.
Q. 그밖에 최근 디자인 신의 흐름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A. 사실 디자인 신의 트렌드나 흐름을 빠르게 접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주목할 만한 최신 이슈는 FDSC의 행보인 것 같습니다. 올봄에 오픈한 ‘더 현대’의 브랜딩에 FDSC 회원들이 대거 참여했거든요. 백화점 오픈 후 클럽에서 회원 소식을 전할 때 너무 많은 회원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바람에 두 차례에 나눠서 소개해야 할 정도였다고 하더라고요. ‘느슨하지만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고 있구나’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꾸준히 건강한 커뮤니티로 함께 성장해나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큽니다.
Q. 마지막으로 더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A. 소셜 활동을 하면서 많이 느낀 점인데요. 여성들은 그동안 항상 겸손해야 하고 스스로를 낮춰야 하는 것이 미덕인 줄 알고 살아왔더라고요. 하지만 조금 더 당당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황선우 작가의 ‘멋있으면 다 언니’라는 책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다양한 직업군에 있는 여성들을 인터뷰한 모음집으로 그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여성 디자이너들도 연대를 바탕으로 다양한 활동을 지향하며, 그것들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면 좋겠어요. 크든 작든 계속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지속되길 바랍니다.
/구선아 schatzs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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