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2일 만찬 회동에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합의한 내용을 두고 여야가 아전인수로 해석하며 국회의 제2차 추가경정예산안 심사가 대혼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표는 추경의 총규모를 늘리지 않는 선에서 소상공인 지원금 상한액을 늘려야 전 국민 재난지원금도 논의할 수 있다며 여당을 압박했다. 그러나 송 대표는 추경안을 수정해 전 국민에게 지급할 재난지원금을 편성하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14일부터 시작되는 추경안 심사를 두고 여야가 정면충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대표는 13일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전날 합의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대해 “쌍무(양쪽 모두의 의무)조항이기 때문에 민주당에서 노력하지 않으면 저희도 긍정적인 검토를 노력하지 않을 것”이라며 “민주당이 요구하는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두텁게 하겠다는 것이 어느 선인지를 명확하게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대표는 전날 송 대표와 합의한 가운데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만 초점이 맞춰져 소상공인 피해지원금(약 3조 9,000억 원, 점포당 최대 900만 원) 상향이 우선이라는 내용이 강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우리가 두 개의 당론을 동시에 지킬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걸 판단하는 건 송 대표의 몫”이라고 말했다. 두 개의 당론은 야당의 소상공인 피해 지원 확대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반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송 대표가 소상공인 피해 지원 확대 문제에 대한 대안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이날 현안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도 이 같은 원칙을 재확인했다. 이 대표는 “저희는 (추경의) 재원이 늘어나는 부분은 합의한 적이 없다”며 “민주당이 정부 측과 (지원액 상향을) 합의하지 못 하면 저희도 전 국민 지급 방식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추경안을 직접 협상하는 원내지도부도 이 같은 당의 입장을 명확히 했다.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어제 합의 내용은 정부 방역 지침에 따라 손실을 입은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지급) 대상과 범위를 넓히고 두텁게 지원하는 데 우선적으로 추경을 활용하고, 이후 남는 재원이 있을 시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 범위를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본예산에 편성된 예산과 중복되거나 실효성이 없거나 집행률이 저조한 예산 삭감에 과감히 동의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김기현 원내대표는 “전 국민에게 지원한다고 합의했다는 건 팩트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추경안에 4단계 거리 두기에 대한 손실까지 계산에서 반영했을 때만 검토할 수 있는 안이라는 발언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선별 지원 방안이 힘을 잃었다”며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송 대표는 이날 “(당의) 대표가 결단을 했다면 존중하고 이것을 내부적으로 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이 보편적인 일 처리 방식”이라며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 대표의 결단을 존중하고 뒷받침했으면 한다”고 요구했다. 송 대표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서도 “소득 하위 80% 국민을 지원하려면 선별 방식 논란도 많고, 몇 가지 정리하면 충분히 100% 지원이 가능하다”며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민주당은 이날 비공개 최고위원회를 열어 이 같은 방침에 쐐기를 박았다.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최고위에서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 (지급)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며 “사실상 당론으로 결정해서 정부와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여야가 합의 사항을 각자 유리하게 해석하면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14일부터 시작되는 추경안 심사는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의 당론대로 재난지원금의 전 국민 지급을 위해서는 3조 원의 재원이 필요한 가운데 소상공인 피해 지원액 상향 조정을 위해 1조 원 이상의 증액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여야가 쌍무조항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4조 원 이상의 추가적인 재원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신용카드 캐시백(1조 1,000억 원)과 고용·민생 지원금(2조 6,000억 원)을 모두 삭감해도 재원이 부족하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더욱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기 진작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신용카드 캐시백과 고용·민생 지원금의 예산 삭감에 반대하고 있다. 정치권이 재원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빚 갚을 돈인 국채 상환 예산(2조 원)도 손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정치권이 설익은 합의를 하고 ‘재원 마련’ 폭탄은 정부로 돌렸다”면서 “추경안을 놓고 여야가 명분 싸움에 들어가면서 추경이 산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