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인간은 본래 변화하는 동물이라 생각해. 최근까지도 인간은 ‘발전’해야만 한다고 굳게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나를 힘들고 지치게만 하더라. 그래서 발전은 내려두고 변화를 품기로 했어. (…) 우리들이 같이 보내는 시간보다 변화가 무지막지하게 빠르게 느껴질 때도 내게 다가오는 변화를 잘 안아볼래. 그 안에서 내가 너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너의 시간 속에 잘 가닿아줬음 좋겠다. 우리 인생 테마는 언제나 사랑이잖아. 그저 사랑뿐이야. 목소리로 놓고 가지 못해 편지를 놓고 갈게. 사랑해. (슬릭·이랑, ‘괄호가 많은 편지’, 2021년 문학동네 펴냄)
대재난 시대, 두 여성 뮤지션이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공연장 문이 닫히고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일 수 없게 된 세계에서 뮤지션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비대면 시대의 예술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만성적 우울감, 그것을 물리치기 위한 취미, 반려동물, 임신중지, 창작의 기원에 대한 대화를 종횡무진 나누며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다 잊을 수 없는 ‘편지 속의 편지’ 한 통이 나온다. 이랑이 상대 슬릭이 아닌 과거에 다른 이에게 썼던 편지다. 암 투병중인 친구 도진을 보러 갔다가, 돌연 통증이 심해져 그가 다급하게 구급차를 타고 떠난 뒤 이랑 작가는 위의 편지를 남긴다. 하지만 그날 밤 친구 도진은 그 편지가 놓인 곳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사망한다. 끝내 수신자에게 가닿지 못한 편지를, 그에게 주고 싶었던 모든 사랑과 우정을, 이랑은 지금껏 잊지 않고서 지금 내게 귀 기울이고 있는 애틋한 친구에게 돌려주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허황한 발전과 진보만 떠벌이는 이들은 숨 막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 느닷없고 끝없는 ‘변화’를 끌어안은 채, 표정이 보이지 않는 너의 마음을 헤아리며 함께 견뎌보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이랑 작가는 ‘우리 인생 테마는 언제나 사랑’이라 했다. 무엇이 더 있겠는가. 그저 사랑뿐인 것이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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