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 서술에서 1930년대 말부터 1940년대 초는 이른바 ‘암흑기’로 불린다. 일본 식민 지배의 마지막 10년 동안 한반도에 살았던 시인, 철학자, 소설가, 저술가 들은 전쟁과 파시즘의 광풍 속에서 민족의 미래를 더는 상상할 수 없게 됐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역설적으로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모더니즘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책 '미래가 사라져갈 때'는 서양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의 모더니즘 연구서다. 저자인 자넷 풀 토론토대학 동아시아학과 교수는 한국 근대 모더니즘 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책은 한국 근현대사의 암흑기로 불리는 이 시기를 20세기 중엽 세계 모더니즘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례로 손꼽는다. 세계 모더니즘의 흐름 속에서 한국이 독창적인 미학을 탄생시켰다고 평가한다.
책에서는 국내에서도 2000년대 들어서야 연구가 본격화한 식민 말기, 특히 해방 후 북한으로 향한 작가들이 주로 거론된다. 이태준, 박태원, 최명익, 임화, 오장환, 김남천 등의 작품이 1980년 후반까지도 출판 금지돼 제대로 된 연구가 거의 없다.
저자는 당시 모더니즘이 사라지는 미래에 직면한 식민지 부르주아 주체들이 펼치는 상상의 고투였다고 말한다.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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