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무더위는 물에 더위가 합해진 ‘물더위’에서 온 말이다. 대기 중에 물기가 많아 후덥지근하게 더운 상태를 가리킨다. 실내에 에어컨을 켜면 밖이 여름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이지만 문을 열고 밖에 나서는 순간 열기가 사람 몸을 훅 감싸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정수리부터 흘러내린다. 손풍기나 목풍기로 열기를 조금 식힐 수 있지만 요즘 날씨에 밖에서 움직이거나 일하기가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줄지 않고 4차 대유행을 거치면서 의료진의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실내에서 중증 확진자를 진료하고 돌보는 일만이 아니라 실외 선별 진료소에서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조사하는 일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겨울에는 살인적인 추위로 고생하며 핫팩으로 손발을 녹이고 여름에는 묵묵히 살인적인 더위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의료진은 코로나19로 인해 방호복을 한시라도 벗을 수 없는 상태에 있으니 그 고충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요즘 같은 여름에 방호복을 벗으면 땀이 온몸을 흥건히 적신 상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고통을 겪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국내외의 이동과 사람 만나기에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산업과 생업에는 차이가 있다. 이전보다 호황을 누리는 기업이 있는 반면 생계의 극단에 내몰린 기업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 고용을 유지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손실을 보상하는 공적 임무를 수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고 재난에 처한 사람을 돌보지 않는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12조 원의 재원을 마련해 지난해 5월부터 8월 말까지 재난지원금을 수령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통계를 보면 기부는 73만 7,000건, 2,803억 5,000만 원에 불과했다. 정부는 전체 지급 대상자의 10~20%가 기부하면 1조 원을 마련해 국민의 고용 유지와 일자리 창출에 사용하고자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기부금은 전체 지원금의 2%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재난지원금을 수령해 소비에 사용했다. 요즘도 5차 재난지원금의 지급을 두고 전 국민 지급과 선별 지급을 둘러싸고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재난지원금의 지급 방식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이에 대한 국민의 목소리는 제대로 수렴되지 않고 있다. 모든 국민이 재난지원금 받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일부는 받기를 원하지 않은지 말이다. 이는 시비의 문제가 아니므로 각자의 입장이 있을 수 있다. 모두가 코로나19로 고통을 겪었기에 예외 없이 재난지원금을 받겠다고 할 수도 있고 고통의 양상이 다르므로 재난지원금이 다른 용도로 쓰였기를 바랄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주희를 비롯해 성리학에서 말하는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의 관계를 살펴볼 만하다. 사람의 마음에서 천리와 인욕은 늘 순간순간 다툰다(천리인욕교전·天理人欲交戰). 사람이 천리를 따르면 나와 남의 고통을 객관적으로 고려하고 남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반면 인욕을 따르면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지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고 한다. 천리와 인욕은 둘 다 마음의 상태인데 경계가 어떻게 나뉠까. 이에 대해 주희는 사람이 배가 고플 때 먹을 만큼 먹는 것이 천리라면 넉넉지 않은 밥을 내가 조금이라도 더 먹겠다고 숟가락에 많은 밥을 푸면 인욕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나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일자리를 잃거나 집합 금지로 영업이 제한을 받은 사람에 비해 고통이 크지 않다. 또 오프라인 강의를 온라인 강의로 바꾸었지만 1년 반 넘게 방호복을 입으며 코로나19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보다 고통이 크지 않다. 내가 일자리를 잃었거나 영업에 제한을 받았거나 코로나19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보다 고통이 결코 심각하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내가 나보다 더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을 제쳐두고 재난지원금을 받겠다고 하면 천리가 아니라 인욕에 따른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재난지원금을 받지 않겠다. 나의 의사에도 불구하고 재난지원금이 지급된다면 방호복을 입고 고생하는 의료진에게 기부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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