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내달 15일 가석방이나 특별사면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가 점점 확산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가 가시화되는 데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화합’의 메시지를 던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까지는 사면보다 청와대에 정치적 부담이 적은 가석방 가능성에 무게가 더 실리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과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순차 사면이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한다. 다만 여권 지지자들과 시민단체의 반발은 이 부회장 등의 거취에 큰 변수다. 이들에 대한 사면·가석방 여부는 이제 막 돌입한 대선 정국에도 ‘태풍의 눈’이 될 수도 있다.
송영길 “이재용, 가석방 대상…국민 정서 고민”
지난 20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삼성전자 화성캠퍼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 부회장 출소 가능성과 관련해 “법무부 지침상 8월이면 형기의 60%를 마쳐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반도체 산업의 요구, 국민 정서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법무부가 최근 전국 교정시설로부터 받은 광복절 가석방 예비심사 대상자 명단에 이 부회장이 포함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가석방은 일선 구치소·교도소가 예비심사를 통해 추린 명단을 법무부에 올리면 가석방심사위원회(심사위)가 최종 심사를 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심사위가 표결을 통해 가석방을 결정하면 법무부 장관의 허가를 거쳐 절차가 마무리된다.
위원회는 9명으로 구성되는데 위원장을 포함해 4명이 당연직 위원이다. 강성국 법무부 차관이 위원장을 맡고 구자현 검찰국장과 유병철 교정본부장 등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최종 결정하는 만큼 청와대가 직접 개입할 명분은 없는 절차다.
다만 가석방은 구금 상태에서만 풀려나는 조치다. 이 부회장이 가석방으로 풀려나더라도 취업 제한 규정 때문에 경영 일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는 힘들다. 형 선고의 효력 자체가 사라져 기업 활동에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면과는 차이가 있다. 가석방은 이 부회장 출소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진보 진영과 경영 자유를 위해 되도록 사면을 요구하는 재계 사이에서 정권이 택할 수 있는 일종의 절충안일 수도 있는 셈이다.
靑 “가석방에 교감한 적 없고, 사면엔 확인할 내용 없어”
사실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가석방 요구는 그가 지난 1월18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법정구속된 직후부터 정·재계에서는 꾸준히 제기된 사안이다. 문 대통령 역시 5월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취임 4주년 특별연설·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결코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공을 여론에 넘기는 발언을 내놓았다. 5월만 해도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한 찬성 여론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70% 수준에 육박했다. <관련기사> ▶[국정농담] 이재용, 반도체 여론만 밀면 8·15 특사 될 수 있나
정치권 안팎에서는 가석방뿐 아니라 8·15 특별사면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일부 언론은 이 부회장뿐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도 사면 대상에 올랐다는 보도도 내놓았다. 청와대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만 유보적 분위기라는 구체적인 전언도 함께 돌았다.
정작 청와대는 이 부회장 사면·가석방 논의에 대해 공식적으로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여론이 숙성될 때까지 신중한 자세를 취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1일과 22일 이 부회장 가석방과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검토에 진전된 부분이 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가석방은 법무부에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고 사면과 관련해서는 확인해 드릴 내용이 없다”며 서면으로 같은 입장을 되풀이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21일 서울경제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 부회장 가석방과 관련해 여당과 교감을 이룬 과정은 전혀 없었다”며 “법무부가 어떤 논의를 한다는 얘기도 들은 바 없다”고 밝혔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2일 JTBC ‘썰전 라이브’에 출연해 박 전 대통령, 이 부회장 사면론을 두고 “아는 바도 없고, 들은 바도 없고, (그런 기류를) 느낀 바도 없다”고 강조했다. 사면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이에 대한 의견을 참모들과 공유한 적이 없다는 의미였다.
박범계 “8·15 특사은 불가능, 가석방은 준비 중”
이 부회장 사면·가석방과 관련해서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발언도 시선을 끌었다. 박 장관은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박 전 대통령 사면론에 대한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의 질의에 “특별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8·15가 내일 모레이고 내가 사면심사위원장인데 현재까지 대통령의 뜻을 받지는 못했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이 “아직 지시가 없었다는 뜻이냐”고 거듭 질의하자 “8·15 특별사면은 시기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아주 최소 규모의 원포인트 특별사면이 라면 모를까, 현재까지 특별한 징후가 있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박 장관은 다만 8·15 가석방은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가석방 대상에 이 부회장도 포함되는지를 묻는 질문에 “특정인의 가석방 여부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사안은 아니다”라며 “장관의 권한이 특정인의 가석방과 관련해서 미칠 여지도 없다”고 답했다. “이 부회장도 일반적인 가석방 기준을 따를 것이냐”는 물음에는 직접적인 답변은 피하면서 “기준을 따르지만 일본이나 캐나다 등 해외와 비교했을 때 가석방률을 대폭 높여야 한다는 생각을 취임 초부터 해 왔다”고 말했다.
마침 법무부는 가석방 예비심사 대상자에 대한 실무적 선정 기준을 복역률 80%에서 60%로 최근 완화했다. 공교롭게도 이 부회장은 이달 말 형기의 60%를 채워 가석방 심사 최소 기준을 충족하게 된다.
‘가석방’은 절충안…여권 지지자 여론이 최대 변수
이 부회장 사면·가석방 여부는 결국 다음달까지의 여론 동향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의 광복절 출소 여부에 따라 박 전 대통령, 이 전 대통령 거취도 연쇄적으로 영향 받을 수 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은 그 자체만으로 야권에 강한 파급 효과를 가져올 이슈다. 보수 진영이 박 전 대통령을 기준으로 TK(대구·경북)와 비(非)TK, 친박과 비박 등으로 분열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을 직접 수사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입지가 흔들릴 위험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일 왼쪽 어깨 수술 부위의 경과 관찰과 허리통증 치료 등 지병 치료를 위해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했다. 윤 전 총장은 같은 날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를 찾아 “장기 구금에 안타까워하는 분들에 공감한다”며 “마음속으로 송구한 부분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이 부회장 등의 출소 여부에 가장 큰 변수는 보수가 아닌 진보 진영 지지자들의 의견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여권 강성 지지자들에게는 아직 ‘국정농단’에 대한 단죄론이 뿌리 깊은 만큼 이들의 반응을 일차적으로 살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이 그간 강조한 ‘국민 공감대’에 포함된 그 ‘국민’이다.
무엇보다 올 초 사면론을 꺼냈다가 역풍을 맞고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던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례는 여권에 아직도 충격적인 경험으로 남았다. 여당 대선 주자들 입장에서도 사면은 당내 경선 과정에서 일종의 ‘금기어’일 수밖에 없다. 대선 본선에서나 중도·보수층에 대한 외연 확장 카드로만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청와대도, 여당도, 법무부도 고심하게 만드는 딜레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2일 온라인 정책 기자간담회에서 “사면 문제에 대해선 누구도 특혜를 받으면 안 된다”며 “사면은 명확하게 안 된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가석방에 대해서는 “(이 부회장에게도) 불이익을 줄 필요 없이 일반 수용자와 똑같이 심사해 결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