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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통해 세상읽기] 제민지산(制民之産)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빈부 양극화는 동서고금의 난제

맹자 주창한 경제자립 방안처럼

코로나19로 벼랑끝 선 서민 돕는

‘身飽免死’ 방안 마련 서둘러야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원론적으로 보면 빈부의 큰 차이를 옹호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현실에서 빈부의 극명한 차이는 사유제와 더불어 시작되었고 시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다. 산업화 이전에는 토지의 형태로, 산업화 이후에는 산업 자본과 금융 자본의 형태로, 정보화 시대에는 정보와 디지털의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이같은 방식에다 부동산 소유가 더해 양극화 문제가 한층 더 복잡하게 나타난다.

빈부의 양극화는 얼마나 고전적인 문제인지 논어에서 공자와 제자 자공이 각자의 해법을 제시할 정도다. 자공은 ‘가난하더라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더라도 교만하지 않기(빈이무첨?貧而無諂, 부이무교?富而無驕)’를 양극화의 극복 방안으로 제안했다. 자공은 빈자와 부자가 상대를 자극하지 않으면 갈등이 생기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듯하다. 이에 대해 공자는 제자의 주장이 일견 타당하다고 인정하면서도 ‘가난하더라도 도리를 즐기고 부유하더라도 예의를 좋아하기(빈이락도·貧而樂道, 부이호례·富而好禮)’를 양극화의 해결 방법으로 제안했다. 공자는 빈자와 부자가 각각 상대에게 어떻게 하기보다 각자 스스로 만족할 만한 기준을 가지면 대립이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한 듯하다.

자공은 빈자가 부자에게, 부자가 빈자에서 서로 자극하지 말자는 소극적 방안을 말했다면 공자는 빈자와 부자가 각자 자율적으로 자신을 규제하자는 적극적인 방안을 말했다고 할 수 있다. 공자와 자공의 제안에서 보이듯 유학자들은 빈부의 양극화를 어떻게 극복할지 늘 고민하고 새로운 방안을 내놓았다. 맹자하면 싸우는 나라들의 시대, 즉 전국시대에 “사람은 도덕적으로 완전하다”는 성선을 말했다고 하여 낭만적이며 이상적인 사상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실 성선은 맹자가 현실에서 폭력과 부정이 만연하다는 걸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세상에서 희망을 품기 위한 정박지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라면 다들 이해를 철저하고 세밀하게 따지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조건 없이 이웃을 돕기도 하고 자신의 몫을 덜어 다른 사람과 함께 하기도 한다. 맹자는 사람의 두 가지 경향 중 후자를 키워 서로 믿을 수 있으며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맹자는 현실을 부정하고 꿈에서 답을 찾는 몽상가가 아니라 빈부의 양극화를 비롯해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천적 방안을 내놓았다. 전국시대의 사람은 전쟁으로 인해 가족들이 한 곳에 살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있고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그나마 있던 삶의 기반도 송두리째 잃었다. 이러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맹자는 ‘백성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경제적 제도(제민지산·制民之産)’를 수립하고자 말했다.

제민지산을 마련하려는 고민 끝에 국가가 모든 사람에게 토지를 분배하고 공전의 수확으로 세금을 대신하는 정전제(井田制)를 제안했다. 사람이 예외 없이 경작할 토지를 가진다면 그 수확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맹자의 정전제는 훗날 토지 소유의 양극화가 심해질 때마다 유학자들에 의해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재등장하기도 했다. 사유제가 굳건한 삶의 제도로 자리를 잡자 정전제는 전국 차원의 정책으로 채택되지는 못했지만 정치가 빈부의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점에서 늘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정전제 자체는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이상적 정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정부와 공동체가 백성들이 삶의 기반을 잃지 않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요구를 나타낸다. 코로나19로 인해 산업과 생업의 분야에 따라 빈부의 양극화가 더 짙어지고 있다. 생계의 벼랑으로 내몰리는 업종도 있고 성장의 도약을 마련한 업종도 있다.

이때 맹자가 “명군이라면 백성이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여 반드시 부모님을 잘 모시고 처자식을 잘 돌보아 풍년이면 배불리 먹고 흉년에 죽음을 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명군제민지산?明君制民之産, 필사앙족이사부모·必使仰足以事父母, 부족이휵처자·俯足以畜妻子, 낙세종신포·樂歲終身飽, 흉년면어사망·凶年免於死亡)”고 했던 주문처럼 우리도 코로나19로 인해 빈부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신포면사(身飽免死)의 제민지산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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