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1일 저녁 발표한 담화에서 8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 훈련을 하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협박했다. 김 부부장은 “남조선군과 미군의 합동 군사 연습이 예정대로 강행될 수 있다는 기분 나쁜 소식을 듣고 있다”면서 한미 연합 훈련이 실시되면 “남북 관계의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하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어 “남측이 큰 용단을 내리는가에 대해 예의 주시할 것”이라며 “남조선 안팎에서는 북남 수뇌회담 문제까지 여론화하고 있던데 경솔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연합 훈련을 중단하지 않으면 남북 대화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뜻이다.
북측의 고압적 태도는 문재인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달 30일 “한미 연합 훈련 연기가 바람직하다”고 운을 뗐고 여당 대선 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 재임 기간 중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희망했다. 여권은 대선을 앞두고 남북 이벤트 쇼를 활용하기 위해 연합 훈련 연기론에 군불을 지피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핵 폐기의 실질적 진전 없이 연합 훈련을 미루는 것은 무장해제를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최근 몇 년간 한미 연합 훈련은 야외 실기동이 아닌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으로 대체돼왔다. 그러는 사이에 북한은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연합 훈련 연기나 축소가 아니라 실전과 유사한 야외 실기동 훈련을 복원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런데도 북측의 요구에 따라 훈련 연기 운운한다면 안보보다 남북 대화 쇼를 우선하는 것으로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지난해 김여정이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응분의 조치’를 요구하자 문재인 정권은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어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을 일으켰다. 북핵을 폐기하고 진정한 한반도 평화 체제를 만들려면 우리 정부가 김여정의 협박 한마디에 휘둘린다는 얘기가 또다시 나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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