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언덕 바다 모퉁이에 천기가 음음하고 초목이 우거졌네.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사는 내가 너를 버리면 누구와 같이 놀거나.”
삼봉 정도전이 쓴 도깨비에게 사과하는 글의 한 대목이다. 고려 우왕 즉위 후 친원 수구 세력인 이인임 등이 정국을 주도하자 삼봉은 원나라 사신의 마중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유배를 당한다. 인적도 드문 유배지에서 도깨비들이 시시때때로 나타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니 ‘너희들은 음물이니 나와 동류가 아닌데 왜 오는 것이냐?’며 삼봉이 화를 낸다. 그러자 도깨비들은 귀양 온 처지라 사람들이 만나주지 않는데 지금 동류가 아니라고 배척하니 우리를 버리고 누구와 벗하겠느냐 되묻는다. 이에 삼봉이 부끄럽게 생각해 글로 사과한 것이다.
삼봉의 유배지인 나주 회진은 자주 흐리고 비가 왔다. 날이 흐리고 비가 오면 기분이 울적해지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요즘처럼 습하고 땀이 흐르면 기분도 상쾌할 리 없다. 비가 왔다 강한 햇볕이 내리쬐었다 하니 우산 챙기는 일도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낮에 축적된 열기가 대기의 습기와 만나 열대야로 이어지면 잠까지 설치게 된다. 참 반갑기 힘든 상황이다. 삼봉을 괴롭혔던 도깨비처럼.
기후변화로 날씨가 급변하는 일이 잦아졌다. 폭염이나 폭우와 같은 극한 현상이 자주 발생하고 그 강도도 세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고통을 받는 분들은 아무래도 취약계층이다. 야외 노동자와 저소득 노인들은 모두 날씨로 인한 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위험한 기상 상황으로부터 이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데 정부가 제공하는 날씨 정보는 절대적이다.
요즘같이 날씨 변화가 심한 시기에는 더 집중해 기상 상황을 분석하게 된다. 날씨를 예측하는 사람들은 자연의 큰 흐름을 보고, 듣고, 읽고, 이해하려면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불확실성이 너무 커 막막한 순간에도 결정을 내려야 한다. 태풍이 우리나라 근처로 다가와 촌각을 다투는 위험한 상황에도 빈틈없이 대응하기 위해서는 대담함과 순발력이 필요하다. 무심하게 변해가는 날씨와 어울릴 줄 아는 지혜도 요구된다.
도깨비에 대한 삼봉의 사과는 이렇게 끝맺는다. “이미 시대와 어긋나 세상을 버렸는데 또다시 무엇을 구하랴. 우거진 풀밭에서 춤추며 애오라지 너와 같이 놀리라.” 삼봉은 유배지에서 백성들의 삶을 생생하게 경험하고 그들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유배 생활의 괴로움과 외로움을 달래주는 사람들도 거평 부곡민들이었다. 어쩌면 이들이 도깨비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삼봉에게는 백성이 가장 귀하다는 생각의 뿌리가 자라난다. 기상청 사람들은 날씨를 통해서 세상을 보게 된다. 날씨에 따라 국민들과 함께 울고 웃는다. 하늘은 친구처럼 대하지만 국민들은 하늘처럼 섬긴다. 사람이 곧 하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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