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츠린 어깨가 이토록 오랫동안 펴지지 않을 줄 몰랐다. ‘이번이 마지막 고비일 거야’ 라고 마음 속으로 간절히 기도해 보지만 팬데믹 위기는 도돌이표처럼 계속 된다. 힘들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느냐만 한국 영화산업은 고사 직전이다. 공들여 만든 작품을 개봉하는 일이 어느 순간부터 영화인들에게는 전쟁처럼 고통스러워졌다. 모든 결정의 순간이 어렵다. 개봉을 미룰 것인지 강행할 것인지, 극장으로 직진할 것인지 아니면 우회로를 탐색할 것인지 등을 거듭 고민해야 한다. 지난 달 28일 개봉한 영화 ‘모가디슈’의 류승완 감독 역시 잠 못 드는 밤을 오래도록 보냈다.
‘모가디슈’는 1991년 내전에 휩싸인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 고립됐던 남북 외교관이 함께 탈출을 시도했던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다. 제작비가 255억 원이나 들었고, 4개월 동안 아프리카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했다. 허망하게 코로나19에 제물로 내줄 수 없는 작품이다. 긴 고민 끝에 ‘여름 극장’을 택했다. 단 한 명의 관객을 위해서라도 극장에서 선보이자고 결심했다. 그 결과 지난 달 28일 개봉한 ‘모가디슈’는 호평 속에 200만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를 두고 류 감독은 10일 화상으로 진행 된 인터뷰에서 “기적 같다”고 말했다.
류 감독은 “솔직히 제작진 모두 흥행 스코어에 대한 욕심은 덜했다"며 “다만 원칙은 ‘극장 개봉’이었다. 누가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해도 영화를 스트리밍으로 넘길 순 없다는 게 모두의 생각이었다”고 전했다. 5년 만에 가까스로 열린 ‘빅 이벤트’ 올림픽도 만만찮은 경쟁자였다. 류 감독은 “이런 와중에 많은 분이 영화를 보고 응원을 해주신다. 한편으로는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윤석, 허준호, 조인성, 구교환 등 출연했던 모든 국내외 배우와 스태프들에게도 거듭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류 감독은 “촬영을 진행 한 모로코가 아랍어 사용권인 데다 공용어가 더 있긴 하나 잘 모르는 프랑스어였다”며 “처음엔 숙소에서 ‘물을 달라’는 말조차 쉽게 통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당연히 아프리카와 유럽 각지에서 온 외국인 배우들과의 소통도 어려웠다. 하지만 현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국적은 달랐지만 모두 ‘영화인’이었다. 류 감독은 “영화 현장에 모이는 사람들에게는 ‘영화 언어’라는 게 있다”며 “신기한 경험이라 할 정도로 촬영 현장 분위기가 좋았다. 사람들이 너무 친절하고 착했다”고 말했다.
실화 소재 작품인 만큼 사전 취재가 힘들었지만, 그 과정 역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꼼꼼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고 했다. 류 감독은 “영화 엔딩 크레딧에 그간 만났던 사람들과 참고 자료가 모두 소개 된다”며 “외교관, 종군 기자, 북한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추천 받은 서적과 자료를 모두 구해 읽었다”고 말했다. 류 감독은 “오히려 실제 사건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아서 관객들이 현실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연출하는 게 더 신경 썼다”고 덧붙였다.
한편 영화는 남북 분단 현실, 내전 상황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모가디슈 시민들의 시위, 어린 아이들까지 총을 들게 되는 내전의 참상도 담아 냈다.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류 감독은 “관객의 몫”이라고 짧고 굵게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류 감독은 개봉을 준비 중인 다른 영화에 대한 관심까지 호소했다. “극장 상황이 쉽지 않지만 진짜 기적적으로 잘 가고 있다”며 “모가디슈 뿐 아니라 다른 한국 영화, 아니 외국 영화까지 포함해 모든 영화가 최선을 다해 만든 작품이다. 예쁘게 봐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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