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의 신생 배터리 업체 A 사는 최근 국내 배터리 대기업 B 사의 연구원을 배터리와는 전혀 무관한 계열 컨설팅사로 영입하려 했다. 경쟁 업체로의 ‘전직 금지 약정’으로 생기는 법적 분쟁을 회피하기 위해 일단 컨설팅사로 채용한 후 기술을 빼돌리려 한 것이다.
# 지난 2018년 3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재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C 사의 연구원들은 중국 경쟁 업체에 기술을 넘겨주는 대가로 고액 연봉의 이직을 제안받았다. 이들 연구원은 이미 서버 및 업무용 PC에 저장된 핵심 기술 자료를 중국 업체에 제공한 상태였지만 결국 첩보를 입수한 당국에 덜미가 잡혔다.
당정이 세제 지원을 중심으로 논의하던 국가핵심전략기술법에 ‘기술 유출 방지’ 조항들을 추가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 같은 기술 유출 사례를 막지 못한다면 기술 개발 역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중국이 해외 고급 인력을 유치하기 위한 천인계획(千人計劃)을 시행하는 등 인력 쟁탈전이 국제적으로 전개되자 업계에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쏟아졌다.
당정은 국가핵심전략기술의 매각 또는 이전, 해당 회사의 인수합병(M&A) 조건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핵심 기술을 가진 연구원의 ‘이직 금지 계약’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등 기술·인재 유출 방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계획이다.
◇법망 속속 피해가는 고도의 기술 유출…5년간 111건 적발=우리 핵심 기술과 인력을 유출하기 위한 경쟁국과 경쟁 업체들의 수법이 날로 고도화되고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2016년 1월부터 올 6월까지의 산업 기술 유출 적발 사건은 111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국가 안보와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 기술 유출 사건도 35건이나 됐다.
분야별로 보면 반도체를 포함한 전기전자 분야 기술 유출이 41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디스플레이(17건), 조선(14건), 자동차(8건), 정보통신(8건), 기계(8건) 등이 뒤를 따랐다.
특히 ‘중국 제조 2025’를 내세운 중국은 우리 기술·인재를 탈취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우리 반도체 기업인 ‘매그나칩’에 대한 인수 시도가 대표적이다. 중국계 사모펀드인 ‘와이즈로드캐피털’은 올 3월 매그나칩을 인수하기로 결정했으나 현재 미국 정부에 의해 제동이 걸린 상태다.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매그나칩의 매각 작업 중지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제2 매그나칩 막자”…‘회계장부 열람권’ 통한 기술 유출 방지도 검토=정부 여당이 국가핵심전략기술법을 통해 국가핵심전략기술의 매각 또는 이전, 기업의 M&A 등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 역시 ‘제2의 매그나칩’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볼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매그나칩의 매각 소식이 알려지고 나서야 뒤늦게 매그나칩이 보유한 OLED 구동칩(OLED DDI)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OLED 구동칩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에 당정은 매그나칩 매각과 같은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반도체·2차전지·백신 전체를 국가핵심전략기술로 지정한 후 국가 지원 여부와 관계없이 매각 시 정부 승인을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반도체기술특별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민간이 개발한 OLED 기술은 보호 대상이 아니어서 중국이 구입을 추진했는데, 이 같은 사례를 막자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당정은 소수주주의 회계장부 열람권을 통한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대안도 검토하고 있다. 상법상 회사 지분의 3% 이상을 보유한 주주는 회계장부 열람권을 갖는다. 업계에서는 이를 통해 경쟁 업체나 해외 펀드가 기술을 유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외국인의 지분 취득에서부터 회계장부 열람권 등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취업의 자유’에 ‘전직 금지 조항’ 막히자…법적 근거 마련=국가핵심전략기술을 가진 회사가 직원을 채용할 때 작성하는 ‘이직·전직 금지 약정’에 대한 법적 근거도 마련한다. 그간 업계에서는 회사가 핵심 기술 연구원들과 ‘전직 금지 약정’을 맺더라도 법정 공방으로 갈 경우 법원이 ‘직업 선택의 자유’를 들어 직원의 이직을 허용하거나 형량을 경감하는 경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 내부의 전직 금지 약정을 위반했다고 해도 실제 법원에서 이직 자체가 금지되는 판결이 나오기가 쉽지 않은 구조”라면서 “기업들이 기술과 인력들을 보호할 수 있는 보다 꼼꼼한 법 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민주당은 해외 사례도 다각도로 검토하면서 다양한 해법을 모색할 계획이다. 민주당의 또 다른 핵심 관계자는 “이미 일본은 외국인에 대해 핵심 기술 연구개발(R&D) 참여 단계에서부터 검증 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 한국의 반도체·배터리 등 핵심 기술에 대한 외국인 석·박사 인력의 상당수가 더 좋은 조건의 미국과 중국으로 가기 위해 한국 기업에 취업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은 만큼 이에 대한 대비책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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