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 평균 100회 이상 폐쇄회로TV(CCTV)에 노출된다고 한다. 이쯤 되면 사방 곳곳에 CCTV가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좋게 보면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CCTV가 해결사 역할을 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내 의사와 상관없이 하루 종일 감시당하는 것 같아 불쾌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안전을 지켜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양날의 검과 같은 존재가 바로 CCTV다.
최근 CCTV를 수술실에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올 들어 대리 수술 의혹이 연이어 기사화되면서 병원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의사가 아닌 의료 행위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대리 수술을 했다는 것은 경악할 사건이다. 지탄받아 마땅한 범죄행위다. 절대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의혹이 불거졌고 이후 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환자의 알 권리와 재발 방지 차원에서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정치권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을 아예 법으로 정하려는 것이다. 사실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이 발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3년 12월 한 여고생이 성형수술 중 뇌사에 빠진 사건이 발생한 후에도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고 몇 차례 관련 법안이 만들어졌지만 국회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21대 국회에는 수술실 CCTV 관련 법안이 3건이나 올라와 있다. 여야 구분 없이 동의하는 분위기다. 조만간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갔을까. 대부분의 의료인들은 CCTV와 상관없이 오래전부터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최선의 치료를 하고자 노력해왔다. 극히 일부의 잘못된 의료 행위 때문에 의료인 모두가 매도당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현실을 외면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든 무너진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 대리 수술 의혹이 원인이었으니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 수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래서 CCTV 설치를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우려할 만한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의사들이 위축될까 걱정스럽다.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느낌은 차치하더라도 CCTV로 감시 아닌 감시를 받는 상황이 되면 소신껏 치료하기 어려울 수 있다. 수술을 하다 보면 환자의 상태와 조건에 따라 일반적인 프로세스를 벗어난 방법으로 수술하기도 한다. 때로는 위험 부담이 다소 크더라도 환자에게 가장 좋은 결과를 주기 위해 새로운 방법으로 수술할 수도 있다. 하지만 CCTV가 설치되면 자칫 오해를 받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걱정해 일반적인 프로세스로만 수술하려 할 수도 있다.
수술을 하다 보면 환자들의 민감한 부위가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이 또한 CCTV에 잡히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수술에만 집중해야 할 의사가 이런 부분까지 신경 쓰다 보면 집중력이 분산돼 최선의 치료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수술을 보조하는 간호사나 간호조무사의 행위 중 어디까지가 정당한 의료 행위이고 불법인지 그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것도 문제다. CCTV 도입을 검토하면서 변호사에게 상담도 받고 보건복지부에도 질문을 했지만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변호사는 정확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재판장이 결정할 것이라고 답했다. 필요한 기본적인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CCTV부터 공개해야 한다는 게 한편으로는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CCTV를 설치함으로써 의사들이 감당해야 할 부담감보다 환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CCTV가 없어도 환자가 의사를 믿고 온전히 자신을 맡길 수 있는 상황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극소수 의료진이 환자들의 불신을 키운 상태다. 여러 가지 예상되는 우려가 있음에도 CCTV 설치에 대한 의료진의 고민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