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하루 확진자 수가 2,000명을 돌파하고 백신 수급은 들쑥날쑥한 상황이 이어지며 ‘방역 콘트롤타워’라는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입에도 눈이 쏠리고 있다. “짧고 굵게”한다던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실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고 백신 접종 일정에도 혼란이 생겼다. 백신 접종률은 어느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로 떨어졌는데 집단면역 목표 시기는 문 대통령 10월말, 방역당국 11월말 등 정부 내에서도 엇갈리고 있다. 항체 형성과 집단면역을 위해서는 당연히 2차 접종 완료율이 가장 중요한데, 정부가 앞장서서 연일 “추석 전 3,600만명 1차 접종 달성” 계획을 홍보하면 국민들을 호도할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점차 낮아지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진솔한 사과와 반성에 지나치게 인색한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모더나 ‘반토막’ 사태에 노바백스도 불안…장관·총리만 사과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가운데 8월 코로나19 백신 한국 공급량을 절반만 줄 수 있다는 미국 제약사 모더나의 통보는 국민들을 다시 한 번 당황케 했다. 방역당국은 정부는 강도태 복지부 2차관을 대표로 하는 공식 항의 방문단을 모더나사에 보냈다. 또 모더나 백신의 1·2차 접종 간격을 4주에서 5~6주로 부랴부랴 더 늘려 잡았다.
정부가 올 3분기 안에 계약한 노바백신 백신 2,000만명분(4,000만회분) 수급에도 비상이 걸렸다. 노바백스 측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신청을 4분기로 미뤘기 때문이다. 백신 수급이 불안정해지자 정부는 13일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 연령을 50대에서 30대에서 대폭 낮추기도 했다. 안정성을 이유로 30대에서 50대로 기준을 올린지 고작 한달여 만이다.
특히 모더나의 백신 공급 불안은 예고된 사태였다는 평가도 나왔다. 모더나는 앞서 7월에도 생산 차질을 이유로 7월분 물량 130만 회분을 8월에야 보냈다. 이에 방역당국은 7월 50대 대상 접종 백신에 화이자 백신을 추가하고 3주인 화이자 백신 1·2차 접종간격도 모더나 백신과 같은 4주로 조정했다.
모더나 백신 공급 차질 사태 당일 국민들에게 사과한 사람은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뿐이었다. 권 장관은 9일 “범정부 백신 도입 태스크포스(TF) 팀장으로서 모더나 백신 공급 차질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것에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7월30일 브리핑에서 “8월 모더나 백신 850만 회분이 제때 도입될 것”이라고 소개했던 김부겸 국무총리는 13일 대국민 담화에서 “신속한 접종을 원하시는 대다수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매우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文은 “세계적 공급 문제”…‘국산 백신’ 띄우기로 선회
반면 정작 모더나 계약을 전면에서 이끈 문 대통령은 사과나 유감을 표시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9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며 “세계적으로 백신 생산 부족과 공급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문제”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지금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코로나 확산을 차단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지난해 12월29일 모더나 백신 2,000만명분(4,000만회분)이 내년 2분기부터 국내에 공급된다고 직접 발표한 바 있다. ‘백신 확보에 왜 늦었느냐’는 비판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상황에서 나온 ‘깜짝 발표’였다. 청와대는 게다가 당시 “문 대통령과 스테판 반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가 전날 밤 화상 통화를 했다”며 문 대통령이 이를 진두지휘한 것으로 크게 홍보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들어온 모더나 백신은 245만회분(6.1%)이 전부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9일 이에 대해 “모더나 공급 일정에 차질이 생긴 것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복지부 장관이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선을 그었다.
문 대통령은 대신 국민들의 시선을 빨라야 내년 2분기에나 기대해 볼 수 있는 국산 백신 개발로 적극 돌렸다. 내년 2분기는 문 대통령이 퇴임하는 시점이다. 문 대통령은 “해외 기업에 휘둘리지 않도록 국산 백신 개발에 더욱 속도를 내고 글로벌 허브 전략을 힘있게 추진하는 데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다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같은 회의에서도 “백신 자주권 확보를 위한 국산 백신의 신속한 개발도 매우 중요하다”며 “이달 중에 국내 기업 개발 코로나 백신이 임상 3상에 진입할 예정이고 내년 상반기까지 국산 1호 백신의 상용화가 기대되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10일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의 코로나19 백신 ‘GBP510’의 3상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하자 “국산 1호 백신이 탄생하여 상용화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격려했다. 이어 “국내의 임상시험이 신속하게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부는 전방위로 지원할 것”이라고 알렸다.
구체적 복안 없이 “추석 전 3,600만명 1차 접종” “10월 집단면역”
문 대통령은 또 9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최근 백신 접종에 다시 속도를 내면서 40% 이상의 국민들이 1차 접종을 끝냈고 추석 전 3,600만 명 접종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다”며 “집단면역의 목표 시기도 앞당기고 백신 접종의 목표 인원도 더 늘릴 것”이라고 재차 장담했다. 2차 접종률이 OECD 최하위 수준인데도 또 다시 1차 접종을 말하면서 조기 집단면역 계획과 연계했다. 백신 수급난이 여전한데 어떻게 접종률을 올리고 집단면역을 달성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 복안도 없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의 반복된 1차 접종 발언이 국민들의 방역 의식을 느슨하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차 접종률 역시 OECD 하위권이란 사실을 아직 모르는 국민들이 많을 정도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9일 이에 대해 “집단면역을 언제까지 앞당겨야 하는지 특정해서 말씀드리기 힘들다”고만 말했다.
문 대통령은 나아가 ‘K-방역’의 우수성을 재차 부각하는 발언도 했다. 문 대통령은 9일 “무서운 기세로 확산하는 델타 변이로 인해 전 세계 확진자 수가 6주 연속 증가하고 역대 최대 확진자 수를 기록하는 나라가 속출하는 등 또다시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며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국민들께서 협조해 주신 덕분에 코로나를 관리해 낼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한 달 전 “거리두기 4단계 조치를 ‘짧고 굵게’ 끝내자”고 했던 입장도 “거리두기 단계를 연장하게 돼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슬그머니 바꿨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확산세를 잡아나가면서 동시에 백신 접종률을 높여나가야만 고강도 방역 조치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민들께서도 힘드시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주시길 당부드린다”고 호소했다.
11일에는 참모회의에서 “일일 확진자 수가 2,000명을 넘어서게 되어 우려가 크다”면서도 “최근의 확진자 수 증가는 델타 변이 확산에 따른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우리나라는 여전히 다른 국가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은 상황을 유지하고는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감염 확산을 막지 못하면 확진자 수가 더 늘어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라며 “지금까지 성공적인 방역의 주인공인 국민들의 협조를 다시 한 번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12일 기자단 문자 공지를 통해 “방역전략 수정을 염두에 두고 구체적인 검토를 하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식에서도 “코로나 위기를 어느 선진국보다 안정적으로 극복하고 있다”며 “10월이면 전 국민의 70%가 2차 접종까지 완료할 것이고 목표 접종률을 더욱 높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는 “11월 말까지 2차 접종을 완료하는 목표는 차질이 없이 진행이 될 것”이라던 9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설명과는 한 달이나 차이가 나는 목표였다.
이 와중에 ‘문재인 케어’ 자화자찬도 논란…野 “부끄러움 모르나”
이런 사황에서 지난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4주년 성과 보고대회’는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됐다. 건강보험 재정에 비상등이 켜진 가운데 방역 상황도 악화된 상황에서 굳이 ‘문재인 케어’ 홍보 행사를 열었어야 했느냐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왔다.
문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서 “국민들의 지지 덕분에 ‘문재인 케어’를 과감히 시행할 수 있었고 국민들로부터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정책 중 하나가 됐다”고 “지난해 말까지 3,700만 명의 국민이 9조2,000억 원의 의료비를 아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당초 계획을 앞당겨 올 4분기부터 갑상선과 부비동 초음파검사 비용 부담을 줄여드릴 예정”이라며 “내년까지 중증 심장 질환, 중증 건선, 치과 신경 치료 등 필수 진료의 부담도 덜어드리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우려와 관련해 “정부는 4년 전 20조원의 적립금 중 10조원을 보장성 강화에 사용하고 10조원의 적립금을 남겨둘 것을 약속했다”며 “약속대로 건강보험 보장 범위는 대폭 확대하면서 재정은 안정적으로 관리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인식은 곧바로 비판에 직면했다. 문 대통령과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 전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코로나19 상황을 가정한 일시적 전망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2011년부터 줄곧 흑자였던 건강보험 재정 수지는 문재인 케어가 시작된 2018년 이후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특히 2018년 1,778억 원이었던 적자 규모는 2019년 2조 8,243억 원으로 단번에 15배 이상 불어났다. 지난해에는 적자 규모가 3,000억원대로 감소하긴 했지만, 이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개인 위생 관리 강화로 감기·독감 등의 환자 수가 크게 줄어든 데 따른 일시적 현상이었다. 이를 무시하고 지금처럼 보장성 강화 항목만 확대할 경우 적자 폭이 언제든 더 폭증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었다.
더욱이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 외에 뚜렷한 수입원도 없는 상태다.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우리 정부의 국고 지원율은 14% 안팎에 불과해 사회보험을 채택하고 있는 일본(28%), 대만(23%), 프랑스(52.3%)보다 낮은 형편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같은 날 최고위원 간담회에서 “이 시국에 자화자찬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라며 “도무지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정권”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4일 페이스북에서 “과제는 없고 성과만 있었다면 소위 자화자찬이었겠으나, 아직 달성하지 못한 부족함을 과제로 보고한 것을 자화자찬이라 꾸짖기만 하는 건 야박하다”고 반박했다.
靑, 진솔한 사과·반성 꺼리지 말아야
청와대는 호재만 발표하고 악재에는 국무총리실과 실무부처만 대응하는 식의 국정 역할 분담이 언제부터 관례가 됐는지는 불분명하다. 이 같은 관행은 지난달 청해부대 집단감염 사태에서도 확인된다. 당시에도 감염 사태에 대해 서욱 국방부 장관과 김부겸 총리만 사과하고 문 대통령은 군의 안일한 대응을 꾸중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다가 비판 여론이 이어지자 첫 확진자 발생 8일만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첫 사과 입장을 내놓았다.
7월27일 북한과 통신연락선이 재개될 때도 청와대는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이 직접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 10일 통신선이 다시 차단되는 악재가 발생하자 이는 통일부 등 관계 부처의 발표로 갈음했다. 13일 출소한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 가석방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가석방 당일 직전까지 철저하게 “법무부 절차”라는 입장만 고수했다. 같은 날 해군 성폭력 피해 여중사 사건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군 최고 통수권자로서의 ‘사과’보다는 ‘격노’를 택했다. 사과는 서 장관이 대신했다. 지난해 4월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을 두고 “잠정 타결됐다”고 알렸다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변심으로 망신을 당한 것도 외교부가 발표해야 할 사안을 청와대가 자기 성과로 독식하려다 탈이 난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대통령이 정치적 평가를 위해 관계 부처들과 역할을 나누는 행위는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코로나19와 같이 준전시체제에 해당하는 국가 위기에도 그런 이해관계를 굳이 따질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은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국민들의 모든 비판이 보수세력의 정치 공세도 아닐 뿐더러 행정부 수반이라는 자리 자체가 정부의 중대 오류를 책임지라고 있는 직위이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백신 계약·수입 사실을 선두에서 크게 알리는 것 만큼 수급 실패 역시 실무부처보다 더 무겁게 떠안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들의 대정부 신뢰도도 올릴 수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은 모두가 처음 겪기 때문에 어떤 지도자도 완벽하게 대응할 수 없다. 국가 지도자의 선제적 반성과 사죄는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13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오차범위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은 일주일만에 무려 5%포인트 급락한 36%로 집계됐다. 정부 대응 부정 평가 이유로는 백신 수급 문제를 꼽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0일 “사과는 실무부처가 하고 대통령은 호재에만 나타난다”는 기자들 지적에 “신속한 백신 도입과 접종 속도를 높이는 것은 방역당국이나 보건의료계뿐 아니라 대통령도 다같이 노력하시는 일”이라고 밝혔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