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카불 함락 이후에도 아프가니스탄에 머물며 구호 활동을 계속하겠습니다.” (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
“아프간에서 만약 목숨을 부지한다면 내 딸과 같은 수백 만 소녀들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 (랑기나 하미디 아프간 정부 교육부 장관)
20년 만에 다시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까지 점령하면서 대통령마저 해외로 달아나는 등 탈출 러시가 계속되고 있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는 이들도 있다. 생명과 인권 수호를 위해 아직도 아프간을 떠나지 않고 있는 정치·문화 등의 일부 지도자와 구호 단체들이 그 주인공이다.
16일(현지 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매체 더내셔널에 따르면 세이브더칠드런과 의료 지원 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 유엔난민기구와 유니세프 등 과거 7~8년간 아프간 분쟁 지역에서 도움을 준 민간·국제 단체 활동가들은 탈레반 치하에서도 계속 아프간에서 구호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현재 아프간 내 5곳의 외상 센터에서 진료를 계속하고 있고 현장 사무실에 응급 외상 부서도 신설한 상태다.
현지에서 식수와 위생 용품을 제공하고 있는 ‘자비군단(Mercy Corps)’ 책임자인 람 크리샨은 “상황이 악화돼 예측할 수 없지만 안전하다면 카불에 계속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탈레반의 ‘표적’이 된 여성 지도자들 중 일부도 잔류를 택했다. 인도 매체 더뉴스미니트에 따르면 아프간영화협회의 첫 여성 회장인 사흐라 카리미 영화감독은 공개서한을 통해 아프간의 비극에 대해 국제사회가 더 이상 침묵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는 편지에서 “탈레반이 ‘올바른’ 옷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성들의 눈을 도려내는 등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며 “우리에게 시간이 거의 없다. 세상이 아프간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아프간 첫 여성 시장인 자리파 가파리 마이단샤르 시장 역시 영국 아이뉴스와 스마트폰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들이 와서 죽일 날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가족을 떠날 수 없다. 내가 갈 곳은 없다”고 말했다.
아프간 정부 최초의 여성 교육부 장관인 하미디도 자리를 지켰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그는 탈레반이 카불로 진격한 지난 15일 집무실로 출근해 대통령마저 줄행랑을 친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BBC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열한 살짜리 딸이 있다. 나도 아프간의 모든 어머니가 가진 두려움을 느낀다. 내 딸은 자신이 꿈꾼 미래를 갖기 바란다”고 말했다.
아프간 주재 영국대사인 로리 브리스토 경도 자국민 탈출을 돕기 위해 잔류 대열에 합류했다. 브리스토 대사는 원래 14~15일께 아프간에서 탈출할 계획이었지만 4,000여 명의 영국인 및 주재원 관계자들의 대피를 위해 지금껏 카불 공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디언 등 해외 매체들은 브리스토 대사가 올 6월 카불에 파견된 신임 대사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뒤에 남겨질까 두려워하는 상황에서 그의 희생이 빛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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