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살을 가르는 힘찬 모습에 열광했고, 뒤이어 공개된 새 기록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지난 8일 폐막한 2020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수영에 새 희망을 안긴 황선우는 그렇게 ‘뉴 마린보이’의 탄생을 알렸다. 태극마크 단 선수뿐이랴. 박진감 넘치는 경기와 함께 물속의 뜨거운 경주를 이어가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들은 달리기와 수영 중 어느 쪽 성적이 좋을까’ 하는 유치한 생각에서 출발해 좀 더 근원적인 궁금증에 도달하게 된다. 인류는 언제부터 물속에서 헤엄치기 시작했을까.
신간 ‘헤엄치는 인류’는 ‘한 권으로 읽는 수영 만 년의 역사’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고대 이집트에서 출발해 고대 그리스와 중세, 르네상스를 거쳐 오늘에 이르는 만년의 시간을 따라 ‘물에 뛰어드는 행위’를 종교와 패션, 인종·남녀차별, 제국주의와 식민지 등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본다.
책은 수영을 매개로 각 시대와 동시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수영 벽화를 통해 고대 이집트의 기후 변화와 지각 변동을 풀어내는 첫 장은 단연 인상적이다. 이집트 남서부 길프 케비르에 위치한 와디수라 동굴에는 헤엄치는 인간을 묘사한 벽화가 남아있다. 이 지역 유목민들은 이 동굴과 그림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1933년 10월 사막 지도를 작성하던 탐험가 라즐로 알마시에 의해 서구에서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런데 이 와디수라는 흥미롭게도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으로 꼽힌다. 수영의 핵심인 ‘물’과는 거리 먼 건조 지역에서 무려 8,000년 전에 제작된 헤엄치는 사람들의 그림이라니. 저자는 지금으로부터 1만 2,000년 전 지구의 자전축이 약간 흔들리면서 계절풍이 북쪽으로 조금 이동했고, 이때 오래도록 말라있던 사하라에 신선한 비가 내리며 ‘푸른 사하라’ 시대가 펼쳐졌다고 설명한다. 이후 약 8,000년 전 ‘헤엄치는 사람들’ 그림을 그린 화가(?)가 열심히 작품활동을 하던 시기 계절풍이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며 사하라는 서서히 말라 갔다. 이후 한차례 푸른 사하라가 다시 한 번 찾아왔고, 계절풍이 아예 중앙아시아로 물러난 뒤론 지금의 메마른 땅이 이어지고 있다. 원시 예술가들이 벽에 그려 기록으로 남길 만큼 수영이 일반적이었던 이곳은 오늘날 나사(NASA)가 화성 탐사 모의실험을 할 만큼 척박한 곳이 됐다.
인간 진화의 측면에서 수영을 바라보는 시각도 흥미롭다. 책에서는 ‘인간이 나무에서 내려와 바다나 거대한 물가 근처에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다른 유인원들과 처음 차별화되기 시작했을 것’이라는 영국 생물학자 앨리스터 하디의 주장을 소개하며 색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저자는 이 이론을 바탕으로 “최초의 인간 유인원들이 해안선을 정복하며 영역을 넓혀갔을 것이고, 물속을 헤집고 다니며 손으로 먹이를 찾느라 머리를 들고 직립보행을 시작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수영과 관련된 기술이 추가되고, 물고기를 통한 단백질 섭취, 털을 벗고 피하 지방으로 피부를 감싸는 일련의 변화는 유인원에서 인간으로의 진화와도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진다.
책은 이 밖에도 로마 시대 가장 치욕적인 말이 ‘저 인간은 읽지도 못하고 수영도 못해’였다는 이야기, 로마제국에선 남자든 여자든 모두 알몸으로 수영했다는 사실, 중세시대에는 수영이 금지됐고, (부력에 의한 당연한 것이지만) 물에 던져 떠오르는 사람을 ‘마녀’로 지목해 처형한 이야기들을 통해 시대의 면면을 담아낸다. 사무라이 전투 기술로 수영이 발전한 일본에서는 과거 11kg에 육박하는 투구와 갑옷을 갖춰 입고 물에 들어가야 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수영으로 읽는 인류사’라 표현해도 손색 없을 만큼 20년간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긴 역사를 하나의 키워드 아래 흥미롭게 담아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특별한 메시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수영 덕후(?) 저자가 수영 선수·수영 코치·일간지 기자라는 자기 경력을 살려 ‘생각보다 우리 삶 가까이에 있는 수영’의 발전사를 정리했다. ‘역사 속 수영 이야기’ 정도로만 생각했다면 그 이상의 재미를 얻어갈 수 있는 색다른 교양서다. 1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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