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올 상반기 연구개발(R&D) 투자를 대폭 늘렸다. 코로나19 장기화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미래 먹거리 발굴 작업에 나선 것이다. 위기 속에서도 R&D 투자를 줄이지 않고 오히려 크게 늘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는 모습이다.
23일 서울경제가 매출 상위 20곳의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올 상반기 반기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올해 R&D 비용은 총 9,08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610억 원)에 비해 19.4% 증가했다. 매출 대비 R&D 비용 비중도 평균 9.7%로 전년 동기 대비 0.8%포인트 상승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도 R&D 투자는 1조 원에, 매출 대비 비중은 10%에 육박한 셈이다. 조사대상 20개 기업들 중 17곳이 전년 동기 대비 R&D 투자를 늘렸다. 조사 대상은 작년 상반기와 올 상반기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반기 보고서를 공시한 업체로 한정했다.
연구개발 투자를 늘린 곳들은 코로나19 치료제와 신약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기업들이었다. 셀트리온(068270)이 대표적. 셀트리온은 올 상반기 상위 20곳의 총 R&D 투자액의 22.2%에 해당하는 금액인 2,020억 원을 투자했다. 상위 20개 기업의 R&D 비용 중 5분의1을 홀로 투입한 셈이다. 셀트리온은 올 상반기 코로나19 치료제인 ‘렉키로나’ 글로벌 임상 3상 등을 진행했다. 또 화학 합성 의약품도 개발 중이며 램시마SC, 유플라이마 등 바이오시밀러 후속 제품도 잇따라 개발해 해외 시장에서 임상을 진행하거나 판매 허가를 받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바이오 업계에서는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이 10% 정도인 기업들은 톱 클래스에 속한다고 본다”며 “셀트리온은 10%의 두 배인 20%를 훌쩍 넘겼으니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전통 제약사들 중에서는 종근당(185750)과 대웅제약(069620)이 눈길을 끈다. 코로나19 치료제 ‘나파벨탄’을 개발 중인 종근당의 R&D 투자는 올 상반기 78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5% 늘었다. 종근당이 개발 중인 신약 후보 물질(파이프 라인)은 총 27개로 신약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대웅제약 역시 지난해 상반기 722억 원이었던 R&D 투자를 올 상반기 906억 원으로 25.5% 늘렸다.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도 15.9%에서 17.6%로 상승했다. 대웅제약은 약물 재창출을 통한 경구용 제품인 ‘코비블록’ 등 총 3개의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또 화학 합성 의약품 개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씨젠(096530), 제일약품(271980), 동아에스티(170900) 등이 연구개발 투자를 늘렸다.
업계 대부분이 올 상반기 전년 대비 R&D 투자를 늘렸지만 유한양행(000100), 녹십자(006280), 한미약품(128940)은 줄였다. 모두 R&D를 기업 경영의 중심에 두고 있는 기업들이라는 점에서 다소 이례적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하지만 유한양행, 녹십자, 한미약품 모두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에서는 각각 9.8%, 10.1%, 13.2%로 업계 최고 수준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R&D 투자를 늘리면 아무래도 당장의 영업이익 등 실적에는 마이너스”라며 “그런데도 R&D 투자를 늘리는 것은 코로나19 상황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과실을 얻기까지 오래 걸릴 수 있겠지만 성장을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R&D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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