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국가에서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연쇄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태국과 말레이시아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잇따르고 있으며, 특히 말레이시아 총리는 지난 16일 방역 실패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났다. 또 이들 국가에 공장이 몰린 반도체를 비롯해 자동차·의류 등의 공급망이 ‘셧다운’ 위기에 처했다. 올 초만 해도 코로나19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동남아가 델타발(發) 글로벌 혼란의 진앙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생산설비 베트남→中 재이전 사례도
24일(이하 현지 시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베트남 정부는 최근 하루 확진자 수가 1만 명을 넘어서자 각종 공장 가동 중단 또는 폐쇄 조치를 내렸다. 그 결과 글로벌 공급망에 비상이 걸렸다. 베트남에 정보기술(IT) 업종뿐 아니라 의류·신발 등 노동집약적산업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제품 28%를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하는 독일 아디다스 측은 “7월 중순 이후 베트남 공장 대부분이 생산 차질을 빚고 있다”며 “올 하반기 6억 달러가량의 매출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생산 설비를 중국으로 재이전한 업체도 있다. 미국 신발 제조사인 울버린월드와이드가 대표적이다. 이 기업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해왔는데 베트남에서의 변이 확산으로 다시 일부 설비를 중국으로 보냈다. 상황이 이처럼 심각해지자 나이키 등 신발·의류 제조사 80곳은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베트남에 백신을 서둘러 기증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실제로 25일 베트남을 방문한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은 베트남에 화이자 백신 100만 회분을 무상 제공했다.
‘칩 메카’ 말레이시아는 셧다운 공포
인텔과 ADM· NXP·르네사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 50여 곳의 패키징·테스트 라인이 집중된 말레이시아도 최근 하루 평균 확진자가 2만 명을 넘어섰다. 이 때문에 공장마다 셧다운 위기감이 감돈다.
독일 반도체 기업 인피니언은 6월 지역 내 공장 한 곳을 폐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는 연쇄적으로 완성차 업체 포드의 미국 공장 폐쇄로 이어졌다. 다행히 현재는 재가동됐지만 공장 가동률은 80% 미만에 그친다. 언제 또 셧다운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시장 조사 업체 IHS마킷은 동남아 생산 차질로 칩 품귀가 이어져 올해 완성차 생산 감소량이 최대 710만 대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 도요타와 닛산 등도 최근 차 생산을 줄이는 실정이다.
아세안의 자동차 수출 중심지인 태국도 하루 확진자가 2만 명대로 치솟으며 골머리를 앓고 있다. 태국은 주로 베트남 등지에서 중간재를 수입해 카시트나 자동차 유리, 타이어 등을 생산하는데 무역·공급망 훼손에 직면한 상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동남아가 셧다운되면서 각종 산업의 아세안 공급망 의존에 대한 문제 의식이 촉발됐다”고 분석했다.
곳곳서 시위…정정 불안 가중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으로 민생도 엉망이 됐다. 베트남은 6월까지만 해도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81명에 불과했지만 두 달 만에 100배인 8,000명 수준으로 늘었다. 급기야 수도인 호찌민에서는 무장한 군인들이 시민들의 이동을 통제하고 있다. 완전봉쇄령이 떨어진 것이다.
태국에서는 정부의 방역 대책 실패를 규탄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시위대는 “변이가 확산되고 있지만 정부가 백신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고 경제난까지 겹쳤다”며 쌓아둔 불만을 쏟아내는 상황이다.
무히딘 야신 총리가 이달 중순 사임한 말레이시아는 20일 이스마일 사브리 야콥 부총리가 신임 총리로 지명됐다. 말레이시아는 상대적으로 백신 접종률(2차 40.9%, 블룸버그 기준)이 높은 편임에도 돌파감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신임 총리가 정치·사회적 안정을 빨리 되찾기에는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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