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사건의 처리방안 중 하나인 ‘가정보호사건’ 처분제도가 피해자 보호와 재범 방지라는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관대한 처분이 자칫 가해자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는 만큼 가정폭력사건의 재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5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이 지난 2019년부터 올해 6월까지 입건해 수사한 가정폭력사건 11만 5,642건 가운데 가정보호사건 의견으로 가정법원에 넘겨진 인원은 5만 2,174명이다. 같은 기간 불기소 의견 송치된 4만 4,633명이나 기소의견 송치된 3만 6,038명과 비교해 가장 많다.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사건이라도 검찰이 ‘상담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상당수의 가정폭력사건이 불기소나 상담·사회봉사 위주의 보호처분을 받는데 그치고 있는 셈이다. 가정보호사건으로 분류되면 일반 형사사건과 달리 가정법원으로 넘겨지는 만큼 가해자는 전과도 남지 않는다.
수사당국이 가정폭력사건 피의자에 대해 관대한 처분을 내리는 이유는 가정폭력처벌법에 명시된 ‘피해자 의사 존중’ 조항의 영향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혼하지 않는 이상 가해자에 대한 징역과 벌금은 가정의 공동 부담으로 돌아가다 보니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심각한 폭력을 제외하고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하면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수사기관이 해당 조항에 지나치게 의존해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할 때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상해사건은 일반 폭력범죄와 달리 반의사불벌죄가 아닌 만큼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처벌 가능한데도 경찰과 검찰이 피해자 의사를 이유로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하는 사례가 많다”며 “특히 피해자가 보복이 두려워 처벌불원 의사를 밝힌 것이라면 수사기관의 미온적 처리가 오히려 가해자에게 ‘공권력이 제재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신호를 줘 폭력이 더 심각해질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 가정폭력사범의 경우 재범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법무부에 따르면 가정폭력으로 입건된 피의자 가운데 과거 5년 이내 기소유예 이상의 처분을 받은 사람들의 비중은 2016년 7.9%에서 지난해 12.6%로 크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수사기관의 적극적 개입을 이끌어내려면 관련법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먼저 ‘가정의 안정유지와 피해자보호’로 규정한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조항을 피해자 보호로 한정하고 반의사불벌 대상범죄에서 가정폭력을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 지난 3월 관련 법을 발의했지만 5개월째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울러 가정보호사건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보다 엄격한 사후관리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상희 한국여성의전화 부설 쉼터 ‘오래뜰’ 정책팀장은 “법원이 상담명령을 내려도 가해자가 응하지 않으면 강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며 “가해자가 상담에 불성실할 경우 사후제재를 가하는 등의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은 경찰과 피해자 지원기관, 보호관찰관 등이 참여하는 ‘가정폭력위험성평가협의체(MARAC)’를 전국 280여 곳에 설치하고 가해자의 재범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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