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 당첨이 하늘의 별따기인 ‘청약 전쟁 시대’에 입주자 모집만 3번을 진행한 세종시 행복주택이 있다. 아파트 근처에 조성된 인프라가 없어 편리한 주거생활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프라 부족으로 인한 청약 미달은 입주 자격 완화로 이어지며 행복주택의 취지마저 변질되고 있다. 고립된 행복주택을 두고 “세종특별자치시는 신도시다. 근처 개발이 진행 중이니 기다리면 해결될 문제”라는 견해와 “아파트 위치를 잘못 선정해 자가용이 있더라도 그런 곳에선 살 수 없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에 서울경제 부동산 매체 ‘집슐랭’에서 세종 집현동 행복주택의 현황을 샅샅이 분석해봤다.
2019년 준공된 행복주택…근처에 편의시설이 없어 ‘외딴 섬’처럼 고립
문제의 아파트는 세종특별자치시 4-2생활권 M2블록에 위치한 행복주택이다. 2019년 말 준공된 1,500가구 규모의 공공 임대 아파트다. 입주 대상은 저소득층 청년, 신혼부부, 산업단지 근로자, 65세 이상 고령자다. 26제곱미터를 기준으로 보증금 2,000만원에 한달에 약 8만원씩 내면 이곳에 거주할 수 있다. 주거약자의 주거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행복주택답게 저렴한 가격에 깔끔한 임대아파트를 제공한다.
하지만 아파트 내외부에 위치한 편의시설은 단지 내 대형 편의점 한 개에 불과했다. LH측으로부터 단지 내 상가는 최근 분양을 모두 완료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가로 향했지만 말 그대로 분양만 완료됐을 뿐 입점한 가게는 없었다. 공인중개사의 말에 따르면, 11월에 추가 입주자가 입주하기 때문에 상가 여러 개를 보유한 상가 주인은 9월 이후로 입점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 행복주택 입주민은 “세종시는 아직 대중교통이 발달되지 않아 장을 한 번 보려면 반곡동으로 자가용을 타고 이동한다. 자가용이 없으면 이곳에서 생활하기 쉽지 않다”라고 얘기했다. 심지어 그는 “근처에 음식점 등도 많지 않아 끼니는 보통 배달 음식을 자주 이용하는데 이곳은 거리가 멀어 배달비가 더 나온다”라고 토로했다. 근처에 음식점 하나조차 찾아볼 수 없다 보니 아무래도 편리한 주거생활은 어려워 보였다.
장을 보거나 영화 보기 위해서는 수루배마을, 나성동 등 다른 동네 상권으로 이동해야
입주민이 언급한 반곡동 수루배마을은 도보로 26분, 차로 약 7분이 걸린다. 수루배마을은 1단지부터~6단지까지의 아파트들이 모여 있어 카페와 병원, 학원, 음식점 등이 위치해 있었다. 집현동 행복주택보다는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지만 이 곳도 상권이라고 칭하기에는 영화관 등의 기타 문화 시설은 부족해 보였다.
결국 행복주택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7.7km 떨어진 나성동까지 이동해야 한다. 나성동은 근처에 정부세종2청사가 위치해 세종시 최대 핵심 상권으로 불리는 곳이다. 영화관부터, 동물병원, 음식점, 미용실 등의 부가적인 시설들이 갖춰져 있어 앞서 살펴본 반곡동보다 조금 더 발달한 상권의 모습이다. 집현동 행복주택에서 나성동까지 이동하기 위해서는 대중 교통의 경우 주택에서 도보로 약 5분 걸리는 곳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서 간선급행버스체계 BRT를 타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나성동까지 교통 상황에 따라 약 30~50분 정도 소요돼 상권까지의 교통이 편리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1차 모집 청약 경쟁률 합계 0.80대 1로 마감
행복주택 입주 포기자들의 이야기를 찾아봤다. 입주 포기자들은 커뮤니티 댓글을 통해 “너무 외딴 곳에 있어 실제로 생활하기는 힘들겠다는 판단이 들어 포기했다.”, “위치가 너무 안좋아요. 10년동안 나 홀로 아파트일 듯 대규모 미분양 예상“,”아파트만 지어놓으면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빵 없는 제과점 같다.”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 ‘외딴 섬’처럼 홀로 고립되어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입주자 모집 시 미달을 피할 수 없었다.
LH청약센터에 들어가서 확인해본 결과 현재까지 총 3번의 모집 공지가 나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첫 번째 공지는 지난해 8월에 올라왔지만 청약 경쟁률 합계 0.80대 1로 마감됐다. 그로부터 약 6개월 뒤인 올해 2월 소득 요건과 각종 기간 요건 등이 완화된 채로 추가 모집이 진행됐지만 미달을 피하지 못했고 세번째 모집은 지난 13일까지 진행됐다. 그 결과 697가구 공급에 2,032명이 신청해 세번째 모집 끝에 미달을 면하게 됐다. 하지만 이처럼 입주 요건 완화가 반복되는 상황을 두고 주거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행복주택의 취지가 변질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세종시에 집현동 행복주택과 같은 편의시설을 갖추지 못한 행복주택이 지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세종 조치원읍 조치원중고길 7에 위치한 ‘세종 서창 행복주택’의 경우에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아파트는 101동에 편의점 하나가 자리하고 있고 아파트 바로 앞에는 어린이집, 분식집 등 약 4개의 시설만 위치해 있다. 주거지로 삼기에는 편의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고 가장 가까운 상권인 조치원역까지 도보로 16분이 걸린다. 이 곳 역시 입주자 미달을 피하지 못해 현재까지 4차례에 걸쳐 입주자를 모집했다.
‘산업단지형’인 집현동 행복주택, 핵심 수요층인 산업단지와 개발 시기 ‘엇박자’
세종시에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LH측은 집현동 행복주택이 ‘산업단지형 행복주택’으로 설계돼 당초 수요 분석시 해당단지과 연접한 세종테크밸리(도시첨단산업단지)의 근로자 등을 위해 건설을 추진했다고 했다.
하지만 세종테크밸리를 둘러보니 아직 공사는 진행 중이었고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입주한 기업은 5개에 불과했다. 행복주택은 약 2년 전인 2019년에 완공됐다. 개발 시기를 비슷하게 잡았다면 근처 상권 형성이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었을 것인데 두 공사의 시기가 맞물리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세종테크밸리의 사업 시작은 2015년이었다. 이를 확인한 LH는 산업단지 근로자를 위한 행복주택을 추진했다. 2019년에 4-2생활권에 행복주택이 완공됐지만 세종테크밸리는 예정보다 착공이 늦어져 현재까지도 공사가 진행 중인 상황인 것이다. 산업단지 개발의 세부적인 내용까지는 LH측에서 모두 관여할 수 없기 때문에 개발 시기가 맞물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LH, 주택 수요를 분명히 파악하고 세부 공사 시행 일정을 조율하는 작업 필요
지역 상권과 연계한 인프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LH측에서 독자적으로 이를 주도할 권한은 없기 때문에 세종시, 행복청과의 협의를 통해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LH는 “금년 11월 말에는 동일 생활권 내 공동주택 7개 단지(4,073호)가입주를 시작해 주변 생활 인프라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고 덧붙였다. 이번 집현동 행복주택은 세부적인 사업 추진과 관련한 변동으로 인한 것이지만 세종시에 임대주택 미달 사태가 반복돼 온 것은 사실이다. 이를 두고 시장의 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은 채 과잉공급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파트 공급이 수요자보다는 공급자 중심으로 제공돼 이 같은 현상이 빚어지게 됐다는 것. 이는 청약 미달로 이어져 일반공급 전환 사례까지 생겨 주거 약자의 주거 복지 증대라는 행복주택의 취지도 퇴색하고 있다.
따라서 LH는 향후 주택 수요를 분명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주택을 공급해야 할 것이다. 또 주택 개발 시기를 타 공사 시행 일정을 고려해 세부적으로 조율하고 부족한 인프라에 대한 대안까지 마련해둔다면 거주민들이 더욱 편리한 만족스러운 주거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