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백운규 전 산업통상부 장관을 재판에 넘기면서 혐의를 둔 부분은 그가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를 조기 폐쇄하기 위해 한국수력원자력 등에 부당한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백 전 장관이 인사 불이익을 주겠다며 한수원 등을 압박했다고 판단하고 직권남용·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했다.
특히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가 청와대·산업부·한수원 고위 관계자들의 조직적 범죄라고 보고 공소장에 자세하게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소장에는 이례적으로 참고인 진술까지 대거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4일 공판 준비 기일을 여는 등 본격화된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의혹’ 재판에서 양측의 치열한 법리 공방이 예견되는 대목이다.
26일 서울경제의 취재를 종합하면 백 전 장관의 공소장에는 산업부가 2017년 8월 19일 ‘한수원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에 협조하게 하는 방안 외에는 조속히 월성 1호기를 폐쇄할 수 있는 특별한 방안이 없다’는 사실을 검토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앞서 산업부는 월성 1호기의 즉시 폐쇄를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안을 보고했으나 “장시간 소요될 뿐만 아니라 여소야대 국면에서 국회 통과 여부가 불확실해 논란만 커질 수 있다”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자문위)의 반발에 부딪혀 계획을 접었다고 한다.
정부 측 관계자가 한수원에 압력을 넣도록 직접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내용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부가 2017년 6월 10일 자문위에 월성 1호기 관련 행정소송에서 1심에서 패소한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항소를 취하하는 방식으로 월성 1호기를 폐쇄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를 보고 받은 자문위 경제2분과 고위 관계자는 “원안위가 항소를 취하하면 한수원은 이에 따라 폐쇄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녹색성장위원회 등 정부 위원회에서 한수원에 폐쇄를 권고하면 한수원이 이에 따르는 것으로 정리하라”고 산업부에 추가 지시했다는 내용이 공소장에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방안이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자 산업부 내부에서는 “한수원이 자발적으로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 외에는 적법하거나 논란을 피할 수 있는 다른 확실한 방안을 찾기 쉽지 않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후 백 전 장관 지시로 2017년 10월 산업부 실무진이 채 전 비서관을 찾아가 원전 비중 축소를 골자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수정한 이후 한수원에 원전 조기 폐쇄 등 이행 계획을 요구하는 방안을 보고했다고 공소장에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채 전 비서관이 지연을 이유로 반대하자 실무진 사이에서는 “못해 먹겠다” “절차를 지켜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고 반발했다고 한다.
채 전 비서관은 실무진에 “(에너지 기본 계획을) 수정하겠다는 말을 하려면 청와대에 오지 말라”고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백 전 장관이 ‘탈원전 로드맵을 명분’으로 한수원 스스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을 제출하도록 지속적으로 압박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한수원이 ‘월성 1호기 가동 중단 및 신규 원전 백지화’ 문구가 기재된 ‘설비 현황 조사표’를 작성하도록 지시 받은 것으로 봤다. 이 과정에서 ‘배임’ 등을 염려한 한수원 측은 “특정 문구가 확정적으로 들어가는 것은 곤란하다”고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또 산업부 관계자들은 이관섭 당시 한수원 사장을 찾아가 재차 문구 작성을 요구했으나 “설비 현황 조사표에는 사실관계만 쓸 수 있다”는 거절의 대답만 돌아왔다는 내용이 공소장에 담겼다. 이에 산업부는 이 사장 등을 상대로 인사상 불이익을 가할 듯한 태도로 설비현황조사표 작성을 강권했고, 이러한 분위기는 임원회의 발언 내용에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회의에서 한 한수원 이사진들은 “산업부와 사전에 협의된 안으로 제출하지 않으면 문제가 있을 것”, “이대로 하지 않으면 자리 보전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공소장에 기재됐다.
문 대통령의 ‘댓글’도 이들의 혐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검찰은 봤다. 공소장에는 채 전 비서관이 문 대통령이 “월성 1호기의 영구 가동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 인가요"라는 댓글을 단 것으로 보고 받자 한수원 이사회를 통해 조기폐쇄를 결정하는 동시에 즉시 가동중단에 이르도록 마음 먹었다고 적혔다.
문 대통령까지 나서자 채 전 비서관은 2018년 4월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실 김모 행정관에게 “산업부에 ‘월성 1호기는 즉시 가동중단해야 한다'는 청와대 분위기를 전달하고 청와대에서 ‘산업부가 일을 잘 안 챙긴다’고 생각한다는 점도 전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곧 산업부를 거쳐 한수원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했다는 게 검찰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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