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9일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관련해 “기사열람차단청구권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내용은 위헌적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여당 지도부가 30일 본회의에서 언론중재법 처리를 강행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율사 출신이면서 법제사법위원장을 지낸 이 의원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위헌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서 주목된다.
이 의원은 이날 서울경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 개정안의 가장 심각한 독소 조항은 고의 중과실 추정 규정”이라며 “언론의 본질적 자유를 침해·훼손해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 개개인의 명예·프라이버시 등 인격권과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 사이의 균형이 무너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의원은 기사열람차단청구권 등도 위헌 요소로 지목했다. 그는 “기사 열람 차단은 언론 유통 시장에 관여해 봉쇄를 하는 것이다. 언론 출판 자유에 사전 규제로 작동할 것”이라며 “문제가 있으면 사후적 책임으로 해결해야 하는 게 기본 법리”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언론 단체와 야당 등과 조율 없이 단독으로 언론중재법 처리를 강행하는 것은 민주주의 절차를 위배하는 행동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민주당 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해버리면 어쩔 수 없이 민주주의의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 되는 것”이라며 “더욱이 고위 공직자, 국회의원, 대기업 임원 등도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서 제외한 마당에 굳이 서둘러 법안을 처리할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지도부를 직접 겨냥했다. 김 전 장관은 “최소한 기자협회·PD연합회·언론노조 등 관련 종사자 단체들과의 대화를 통해 절충점을 찾아나가는 노력이 불가피하다”며 “이들이 제안한 사회적 합의 기구인 ‘언론과표현의자유위원회’ ‘저널리즘윤리위원회’ 등의 설치 운영도 하나의 대안으로서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제안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여권 내 반발의 목소리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언론중재법이 통과되면 원고의 소송이 급증해 언론의 패소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마저 제기되면서 여당이 주도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발언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더불어민주당이 여론의 우려를 무시하고 단독 처리에 나설 경우 차기 대선에서는 중도층 등의 이탈로 대형 악재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언론중재법, 절차와 내용 모두 문제
당내 강성 지지층이 가장 통과를 희망하고 지도부도 남다른 의지를 갖고 있는 법안인데도 일부 소신파들의 목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은 법안 자체가 흠결이 워낙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설사 통과를 강행해 일시적으로 지지층의 환호를 받더라도 결과적으로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정을 받아 역풍이 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고의중과실 추정에 대해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측이 소송하면 피고인 언론사는 절대적 책임을 지게 된다. 그냥 소송만 제기하면 피고(언론사)는 모두 패소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언론의 보도에 따른 피해 구제는 언론중재위 제소나 소송 등 현행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피해액은 법정에서 정하면 된다. 현재 법안처럼 최고 5배까지 물린다는 식으로 조항을 만들 일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앞서 오기형 민주당 의원 역시 “통상적인 민사 사건에서 피해를 주장하는 원고가 피고의 고의 등을 입증해야 하는데 개정안은 원고의 입증 책임을 완화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언론중재법에는 ‘징벌적 손해배상’ ‘고의 입증 책임 전환 효과’ ‘열람 차단 청구권에 의한 검열 효과’ 등 세 가지 우려 지점이 존재한다”며 “이러한 우려 지점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언론사는 이기기 어려운 소송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언론 단체 등 당사자들과 충분한 토의를 거치지 않은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민주당 소속 한 의원은 “법제사법위원회의 특권을 줄이기 위해 여야가 합의를 한지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여당 혼자서 법사위에서 마음대로 법안 내용을 수정하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꼬집었다. 국회 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25일 새벽 당초 상임위에서 의결한 안보다 언론 자유를 더 제약하는 방향으로 법안 내용을 수정해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그동안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하면서 주요 조항마다 위헌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결국 자신들 스스로 체계·자구 심사만 하기로 약속한 법사위에서도 급하게 문구를 변경했다. 장영수 교수는 “다수에 의한 폭거를 일으키면 다음 선거에서 필패한다는 역사적 경험이 있어 영미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수당이 이런 식의 입법 독주를 하지 않는다”며 “민주당이 국민들을 사싱살 바보 취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러한 이해관계자와 야당의 의견을 일체 배제하는 입법 독주 행태가 재연되자 여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이날 “조급증을 갖고 혼자 달리면 외톨이가 된다. 우리 사회에는 행동에 나서지는 않지만 뜻있는 시민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들의 뜻과 함께 가야 개혁은 성공한다”고 제안했다.
◇강성 지지층 입김에 무리수…대선 때 대형 악재 될 수도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는 여당이 이처럼 위헌 논란 등을 감수하고 입법을 강행하려는 것은 강성 지지층의 지지 없이는 차기 대선이 힘들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교 교수는 “(정치적 우군이라 할 수 있는) 정의당, 진보 언론, 언론노조 등이 반대하는 데도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 ‘언론을 확실히 개혁해달라’는 지지층을 선거 전에 결집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판단했다.
정치 평론가인 유창선 박사는 “입법 독주를 일삼다가 지난 4월 재보선에서 심판 받은 지 불과 몇 개월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잊은 것 같다”며 “강성 정치인 그룹이 강성 지지층만 의식해서 정치를 하니 정치적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결정은 집토끼를 단속해야 내년 대선 승리도 장담할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에서 나왔지만 오히려 부메랑으로 작용해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유 박사는 “촛불정부를 명분으로 내세웠던 민주당 정부 입장에서는 정말 명분 없는 입법 독주”라며 “강성 지지층을 의식해서 밀어붙인 것이겠지만 결과적으로 최종 통과되면 오히려 대선 정국에서 얻는 것보다 중도층 이탈 등 잃는 것이 더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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