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를 예고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 30일 내부 회의에서도 또 침묵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생산을 재개한 것 같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분석에 대해서도 언급을 피했다.
문 대통령은 3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북핵 관련 현안을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인 국내 이송과 방역·백신, 국민지원금 지급 등에만 발언을 집중했다.
특히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관련한 문 대통령의 침묵은 지나칠 정도로 길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전인 보수 정부 때는 언론 자유를 누구보다 강조했다. 2012년 7월 저서 ‘사람이 먼저다’에서는 “권력은 언론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권력은 언론을 통제하면 안 된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정부는 언론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2019년 4월 신문의날 축사에서는 “이제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권력은 없다”고 단언했다. 심지어 지난달 18일에도 한국기자협회 창립 축사에서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라며 “언론이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한 언론 자유는 누구도 흔들 수 없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도 최근 국내외에서 논란을 일으킨 여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에 대해서는 유독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기자들이 관련 입장을 물을 때마다 연일 “국회에서 논의하고 의결하는 사안”이라는 말만 수 차례 반복하고 있다. 지난 27일에는 이철희 정무수석이 전날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난 건 맞으나 언론중재법 개정안 논의는 전혀 하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같은 분위기를 감안할 때 문 대통령이 임기 중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법안 거부권을 언론법에 행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이 침묵으로 여당에 힘을 실어주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실제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난 19일 “잘못된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구제가 충분하지 않아 피해구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입법적 노력도 필요하다”며 여당 측의 의견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북핵 문제에 대한 언급도 삼갔다. 앞서 IAEA는 지난 27일(현지시간) 북핵 관련 9월 연례 이사회 보고서를 발간하고 영변 핵시설 내 5MW(메가와트) 원자로와 관련해 “2021년 7월 초부터 냉각수 방출을 포함해 원자로 가동과 일치하는 정황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IAEA는 2018년 12월부터 올해 7월 전까지는 5MW 원자로가 가동됐다는 정황이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5MW 원자로는 북한의 핵무기 제작과 관련된 핵심 시설이다. 여기에서 가동 후 나오는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이 추출된다. IAEA는 2021년 2월 중순부터 7월 초까지 5MW 원자로 근처에 있는 폐연료봉 재처리 시설인 방사화학연구소가 가동된 정황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방사화학연구소의 5개월 가동 기간은 북한이 5MW 원자로에서 나온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는 데 걸린다고 과거에 밝힌 적이 있는 기간과 일치한다고 지적했다. IAEA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다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명백하게 위반한 것으로 심히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영변 원자로 재가동이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란의 핵합의 복원 협상의 교착 등에 이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외교정책에 새로운 난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 대통령은 이달 10일 남북 통신연락선이 다시 단절된 이후로는 북한 관련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이들 사안에 대한 문 대통령의 침묵은 아프가니스탄인 이송 작전과 관련해 ‘인권선진국’을 강조한 발언과 대비를 이루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아프가니스탄인 이송 작전을 거론하며 “인도주의적 책임을 다하는 인권선진국으로서 어려운 나라의 국민들을 돕고 포용하는 품격있는 나라로 발전해 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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