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여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속도 조절론에도 불구하고 본회의 상정을 강행하려는 것은 당내 강경파의 입김을 외면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30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 현장에서도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 여론이 우세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절차적 흠결 등을 거론하며 신중론을 제안한 목소리가 이전보다는 커졌지만 당내 여론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윤 원내대표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30일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언론중재법에 관한 의견을 나눴지만 여야 간 이견은 좁히지 못했다. 윤 원내대표는 “야당은 언론중재법의 주요 조항을 철회하지 않으면 수용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저희도 야당의 입장을 수용할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 역시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접근되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합의 불발을 사실상 예고했다.
이날 의총장에서도 윤 원내대표의 입장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이날 의원총회 도중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전반적으로 8월 본회의에서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강했다”고 말했다. 한준호 민주당 원내대변인 역시 “많은 분이 소신껏 발언하고 있다. 대부분 합리적인 이야기를 하고 법안에 대한 이견은 크지 않다”며 당내 이견 노출 가능성을 일축했다.
다만 민주당 지도부의 입장이 현재 여당 소속 의원들의 의중을 전적으로 대변한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 민주당 지도부의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여권 내부에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허종식 민주당 의원은 “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심각한 상황에서 가짜 뉴스 피해 구제법은 당연히 필요한 사안”이라면서도 “한 달에서 세 달 정도는 언론계를 설득하고 여야가 협의하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드러난 것과 달리) 처리를 미루자는 신중론자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비공개로 진행한 최고위 사전회의에서도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추진해온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우려가 제기됐다.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최고위 브리핑에서 “지도부 입장은 법안을 상정해서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여러 절차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의원이 있었다”면서 “반대 의원들은 대부분 ‘내용보다는 절차상 숙의가 필요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었다”고 설명했다.
김원기·문희상·유인태·임채정 등 여권 원로도 이날 송영길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신중한 처리를 당부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이 자리에서 "쥐 잡다가 독을 깬다. 소를 고치려다 소가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언론개혁은 해야 하지만 언론중재법은 보완과 숙의, 사회적 합의로 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인태 전 의원은 "(4·7) 재보선 참패의 원인이 무엇인가"라며 "180석의 위력을 과시하고 독주하는 것처럼 (보였다가) 결국 4월 7일에 심판받은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어 "법안 하나 처리하는 데 일주일 늦어지고, 한달 늦어진다고 세상이 뒤집어지느냐"며 “(대통령 선거일인) 내년 3월 9일이 같은 밤이 안 되려면 4월 7일을 잊지 말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