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된 윤지충과 권상연 등 유해 3구가 사후 230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전북 완주군 초남이성지 인근에서 발견된 유해는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도 박해인 신해박해(1791) 당시 순교한 이들이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1일 전북 전주시 '호남의 사도 유항검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해의 진정성에 대한 교령을 발표했다. 전주교구장인 김선태 주교는 이날 "복자(福者) 추정 세 분의 유해에 대한 해부학적·고고학적 정밀 감식을 요청한 결과, 윤지충과 권상연, 윤지헌의 유해로 판명됐다"며 "이 유해들을 한국 최초의 순교자의 유해로 선언한다"고 밝혔다.
윤지충은 한국 천주교회사에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돼 있다. 고종사촌인 다산 정약용의 가르침으로 1784년 천주교에 입교한 윤지충은 어머니의 제사를 위폐 없이 천주교식으로 지내다가 대역죄인으로 몰려 1791년 12월 8일 전주 남문 밖(전동성당 터)에서 참수형에 처해졌다. 이후 9일 만에 친인척들이 시신을 회수해 매장했지만 그동안 정확한 위치가 확인되지 않았다.
유해 발굴은 초남이성지 담당 김성봉 신부에 의해 이뤄졌다. 지난 3월 초남이성지 조성 작업차 바우배기 묘소를 정비하던 중 윤지충으로 추정되는 유해를 발견했다. 당시 윤지충과 함께 능지처참형으로 순교한 고종사촌 권상연과 신유박해(1801) 때 순교한 동생 윤지헌의 유해도 함께 발견됐다. 전주교구 호남교회사연구소는 전북대학교 등과 함께 해부학적 조사와 유전 정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이들 유해가 순교자에 부합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윤지충과 권상연 묘지에서는 백자사발지석도 함께 출토됐다. 백자사발지석에는 출생 연도, 사망 시기 등의 인적 사항과 묘지 조성 시기 등이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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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교회사연구소장 이영춘 신부는 "윤지충과 권상연은 순교 역사에서 단순히 순서상 만이 아니라 신앙의 모범과 공경에서도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분들"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발견된 순교자의 묘지와 유해는 한국천주교회 순교 역사의 첫 자리를 장식하는 분들의 확인이라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유해가 발견된 초남이성지 바우배기는 '호남의 사도'로 불리는 순교자 유항검의 생가 터이자 조선 최초의 교리당 터다. 유항검과 윤지충·윤지헌 형제, 권상연은 각각 고종사촌, 이종사촌지간이었다. 이 신부는 "유항검이 지역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앙의 동료로서나 혈육으로서도 마땅히 이 자리에 첫 순교자들의 묘를 조성했을 것으로 추정한다"며 "순교자 묘와 유해를 통해 유항검의 역할과 초남이 신앙 공동체의 위상이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고 전했다.
유해에서는 참수형으로 사망한 당시 손상된 흔적도 확인됐다. 이 흔적들은 조선 시대 형벌의 실제를 확인할 수 있는 역사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천주교는 이번에 발굴된 유해를 통해 순교신앙에 대한 살아있는 체험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신부는 "문화사적으로 복잡하고 다양한 묘의 형태가 존재하는데, 순교자들의 묘는 일반적인 묘와 다른 모습으로 확인됐다"며 "한국 천주교 초기부터 발견되어 온 순교자들의 묘지 형태의 변화나 양상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전했다.
김 주교는 이날 발표한 담화문에서 “훌륭한 순교자들의 유해를 하느님께서 코로나19 사태의 대재앙을 비롯해 여러 방면에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이 시대에 드러내신 뜻은 너무 나도 분명하다"며 “그것은 신앙의 본질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위기는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혼동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위기의 시대일수록 특히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주교구는 오는 16일 오전 10시 초남이성지에서 ‘한국 최초의 순교자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신유박해 순교자 복자 윤지헌 프란치스코 현양 미사 및 유해 안치식’을 진행한다. 24일 오후 2시에는 유해가 발견된 현장을 방문해 보고회를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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