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먼저 같은 길을 걸어가본 사람을 ‘선배’, 그 길에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선생’이라고 부른다. 선배는 구구절절 ‘경고’를 해주지만, 선생님은 한마디로 ‘울림’을 전해주신다. 경험자를 선배로 대하느냐, 선생님으로 모시느냐는 전적으로 학생의 판단이겠지만, 학생도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석정현, ‘썰화집’, 2021년 성안당)
출판계에서는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꽤 자주 쓴다. 함께 작업하는 작가도, 출판 과정에서 협업을 의뢰하는 외주작업자들도, 각종 문의전화나 메일을 걸어오는 독자들도 일단은 연배 상관없이 내겐 ‘선생님’이다. ‘작가님’ ‘교수님’ ‘독자님’ ‘담당자님’ 등 단순히 직업이나 역할 뒤에 기계적으로 ‘님’을 붙이는 경직된 호칭보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내겐 보다 가능성이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삶 속에서, 혹은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의외의 배움과 즐거움을 주고받길 바라며 나는 우선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상대를 불러본다.
‘그림꾼의 마감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석정현 작가의 책 ‘썰화집’에는 수없는 의뢰와 마감의 쳇바퀴 속에서도 기계적으로 일하지 않고, 계속 그리며 깨닫고 배우고 전진하는 창작자의 분투가 담겨 있다. 같은 유경험자일지라도 선배는 ‘경험’을 전수하고 선생은 ‘울림’까지 심어준다는 생각은 신선하다. 더욱 신선한 것은 내 앞에 나보다 ‘오래된’ 사람이 앉아 있을 때 선배로 볼 것이냐 선생으로 볼 것이냐 그도 아니면 그저 꼰대로 치부하고 외면할 것이냐에는 나의 판단과 결정이 한몫한다는 것이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높은 연배의 어르신이나 지위가 높은 이에게만 쓰는 권위적인 호칭이라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내게 오히려 ‘선생님’은 만인에게 쓸 수 있고 아무리 불러도 좋은 ‘울림’이 있는 호칭이다. 오늘도 나보다 먼저 뭔가를 생각한 사람, 특별한 울림과 감동을 품은 ‘선생’들이 일터를 오간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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