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든 가슴 아프든 이건 현실이다. 부정하고 싶지만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일이며, 지금도 어딘가에선 일어나고 있을 일이다.
‘D.P.’의 인기는 당연히 드라마의 완성도에서 출발하지만, 그 핵심은 현실 고발에 있다. 온갖 내무부조리가 묵인되던 시대를 지나 점점 나아지고 있다지만, 그 상황을 겪어본 이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아직 멀었다고.
안준호(정해인)는 무표정하다. 표정을 감춰야 하는 사람보다 표정이 없는 사람에 가깝다. 억울하게 사회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키가 크다는 이유로 병과를 부여받고, 자대에는 못잡아 먹으려고 안달인 선임들로 가득하다. 온갖 수치를 받아내면서도 신념을 지키려 했던 선임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끝내 오열한다. 그 처절함은 군대를 다녀온 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연기하는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이등병이라는 점이었어요. 할 수 있는게 없고, 할 수 있는 대답도 정해져 있잖아요. 주변 자극이나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며 인물이 어떻게 적응하는지, 선임들이 하는 말과 표정을 기민하게 캐치하고 리액션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액션보다 리액션에 중점을 뒀습니다.”
그는 공감대를 강조했다. ‘D.P.’가 한국을 넘어 전 세계 넷플릭스 구독자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이유를 직장을 포함한 사회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군필자라면 수도 없이 들어봤을 ‘군대는 거대한 사회를 축소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결국 드라마의 메시지를 통해 현실화됐다.
그 메시지는 사회의 부조리를 겪고 갓 입대한 안준호의 모습으로 현실화된다. 자신보다 더한 부조리를 겪은 이들을 잡으며 “군대에 오지 않았으면 탈영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쓸데없는 소리”라는 답이 나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때 자신이 잡지 않아 목숨을 끊은 탈영병에 대한 죄책감이 계속 따라붙는다.
“안준호는 기본적으로 죄의식이 있는 인물입니다. 문제를 남이나 다른 곳에서 찾기보다 자신 안에 있고, 그것이 영창에서 환상처럼 보이게 되죠. 그 모습은 나와 비슷하지만,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가 미웠을 텐데 그 나름대로 인내하는 모습은 연기하며 쉽지 않았습니다.”
원작 웹툰을 처음 책으로 접했을 때 군대에서 일어나는 리얼한 생활관 이야기에 공감했다. 대답 잘 해야 하고 고참이 부르면 관등성명 대고, 고참이 어깨에 손을 대면 관등성명을 대고. 이등병때는 온 몸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참아야 하고…. 깔끔하지는 않았던 내무반 공기가 떠올랐다.
과거의 군 생활이 자연스럽게 떠오른 탓일까. 완벽하게 구현된 내무실 세트와 리얼한 선임들의 모습에 그만 첫 촬영에서 ‘이병 안준호’를 “이병 정해인”이라 복창했다. “PTSD라고 해야 하나, 훅 나오더라”며 웃어보였지만, 첫 화를 보면 분명 그럴 만 했다. 그리고 이후 촬영에서 자신의 군생활은 연기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연기하면서 그때 생각이 정말 많이 났어요. 이등병 모습으로 훈련소 촬영을 하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고요. 그런데 군대가 그러게 안 좋은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좋았던 선임과 후임도 있고, 나중에 만나서 그때 참 재미있었다는 이야기도 하고. 힘든 기억도 많지만, 내 군인 시절 모습을 생각하게 하는 촬영이 많았어요.”
“가장 공감가는 탈영병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 때문에 탈영한 허치도 병장. 나도 할머니와 함께 자랐고 사랑을 많이 받았기에 울컥한 장면이 많았어요. 그리고 인상 깊은 에피소드는 조석봉 일병. 마음이 많이 무겁고 안 좋았어요. 촬영하며 갑갑했고, 슬프면서 화도 나고, 너무 어려웠어요. 조현철 배우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정말 어려운 배역을 정말 잘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파트너 한호열 상병을 연기한 구교환은 영화 ‘반도’에서 눈에 띄더니 ‘모가디슈’에서 심장을 쫄깃하게 하고, ‘D.P.’에서는 수타면을 치듯 자유자재로 흐름을 주도한다. 이등병이기에 정말 뭔가 나서서 할 수 없는 안준호 대신 치고나갈 때 스르륵 앞장서고, 끊어야 할 때 어김없이 유도리를 발휘한다. ‘한마디’씩 붙여서. 그는 이를 두고 구교환과 원작에서의 안준호 상병을 둘로 쪼개 표현한 것 아닌가 추측해보기도 했다.
“형을 생각하면 벌써 미소가 지어지는데, 정말 재미있고 즐겁게 촬영했어요. 그만큼 서로에 대한 믿음과 배려가 있었고, 가볍지 않은 분위기를 한번씩 풀어줄 수 있는 연기를 너무 잘 해줬어요. 눈만 봐도 통할 정도로 편했죠. 정말 위트 있는 배우기에 촬영장 가는 길이 설레고 기대가 됐어요. 오늘은 형이 어떤 대사를 어떻게 표현할까 하는 재미가 있었거든요.”
반면 황장수 상병을 연기한 신승호는 정 반대로 연기를 잘해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아직 미필이라는 말에 소식을 접한 많은 이들이 놀랄 만큼 수많은 군필자들의 PTSD를 유발했다. 농담이 아니다. 이번주 직장인들의 점심시간 주요 화두는 분명 ‘내가 군대에서 당한 부조리’였을 테니까.
“신승호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고 싶습니다. 너무 훌륭하게 잘 했고, 아직 군대를 안 갔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캐릭터 분석이 완벽하게 되어 있었어요. 감독님의 디렉션을 유연하게 받는 상황들도 많았고요. 어려운 연기고 불편할 수 있는데 잘 소화해줬습니다. 그런데 실제 성격은 예의바르고 착하고 선해요. 첫 촬영날 괴롭힘을 당하는 신을 찍어야 하는데 서로 많이 이야기하고 편하게 때릴 수 있게 해줬던 기억이 나네요.”
한호열은 다음시즌부터 안준호가 따라가야 할 방향이다. “아마 준호가 한호열처럼 상병이 됐을 때는 지금 모습에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그는 추측했다. 이번 시즌에는 민간인 시절, 이제 막 훈련받는 모습에 대한 묘사가 잘 이뤄졌다. 그런 서사가 밑바탕이 되어 시즌2에는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할 것이라고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많은 여운이 있었고, 다음에는 뭐가 펼쳐질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마지막 쿠키영상이 충격적이었는데 그 이후에 어떻게 될지도 궁금하고요. 시즌1을 연기한 배우로서도 다음 시즌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시즌2가 나왔으면 좋겠고 기대하고 있는데, 감독님께 여쭤보니 김보통 작가가 대본을 쓰고 계시다네요. 얼른 받아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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