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을 통합·관리하려는 목적으로 올 초부터 시행된 국가연구개발혁신법(혁신법)에 대해 대학가가 법 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법이 과학기술 분야 R&D 관행 등에 기반해 제정됐는데 성격이 다른 인문사회 분야에도 일률적으로 적용돼 학문의 자율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2일 “국가 R&D 사업 규정 일원화를 위해 제정된 혁신법이 대학의 연구 자율성을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며 개정을 촉구했다.
혁신법은 부처별·사업별로 다르게 운영되는 복잡한 R&D 규정을 통합해 행정적 부담을 줄이고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목적에서 올 1월부터 시행됐다. 정부의 연구비 지원을 받는 모든 사업이 적용 대상이다.
문제는 과학기술분야의 사업관리 규정을 연구목적과 내용, 방법이 다른 학문에도 획일적으로 적용해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대교협 회장단은 “혁신법의 도입 취지는 150여 개에 달하던 각 부처 사업관리 규정을 일원화해 연구자들의 연구 몰입도를 높이고 연구관리를 선진화하겠다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과학기술 분야 연구관리를 주 내용으로 하는 혁신법에 성격이 다른 사업을 무리하게 포함해 대학 현장에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인문사회분야 연구자들이 혁신법 도입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R&D 과제에 참여하는 연구자는 연구노트를 작성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조항이 대표적이다. 인문사회 교수들은 매일 어떤 책을 봤는지 기록하는 것은 인문·사회 연구 특성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대교협은 “인문사회 연구자들은 기존의 학술진흥법에 혁신법을 추가로 적용받아 행정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충분한 의견 수렴도 없이 인문사회분야를 과학기술분야의 일부로 취급하는 혁신법의 시행에 따라 연구에 대한 열정과 의지 저하 등의 절망감을 경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혁신법 적용 대상에서 대학재정지원사업과 인문 사회 분야 학술연구지원을 제외하도록 법을 개정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주장했다.또 “간접비 예산 등 대학의 연구 활동에 대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규제를 개선하고,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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