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경선 버스에 올라탄 국민의힘 예비 후보들이 앞다퉈 부동산 정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사실상 현실성이 떨어지는 ‘공(空)약’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임기 5년간 수백만 채의 주택을 공급하고 대도시 역세권에 최대 4분의 1 값에 아파트를 쏟아내겠다는 내용들이 핵심인 탓이다. 여권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본주택을 향해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던 야권 후보들이 더 심한 부동산 ‘뻥’ 공약을 양산하고 있다는 질책도 나온다.
2일 서울경제가 각 후보 캠프의 부동산 공약을 분석한 결과 주요 계획 대부분이 국민의힘의 정강정책과 배치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당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가 마련한 강령(추구하는 정치 이념)은 모든 국민의 안정적인 거주를 위한 주거 정책을 추구하되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정책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후보들이 내놓은 정책은 하나같이 사유재산을 보호하면서 민간 중심의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시장경제 원리와는 동떨어졌다는 진단에 힘이 실린다. 국민의힘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의 면면을 보면 공공개발 확대를 주장하고 있는 여당과 유사하다. 윤석열 예비 후보는 임기 내에 청년과 신혼부부, 무주택 가구 등에 건설원가로 총 50만 채의 ‘원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 가운데 10만 채는 대도시 역세권의 용적률 규제를 300%에서 500%로 풀어주고 늘어난 용적률의 50%를 공공 기부채납을 받아 공급하겠다는 내용이다. 또 10만 채는 국공유지를 개발해 원가로 분양한다. 홍준표 후보는 도심에 현 시세의 ‘4분의 1’ 가격으로 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다. 도심 공영개발 방식으로 토지는 정부가 보유하고 민간에는 건물만 분양하는 형태다.
원희룡 후보도 ‘반반주택’ 공약을 들고 나왔다. 무주택 신혼부부 등이 처음 주택을 살 때 정부가 집값의 50%를 공동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의 평균 주택 가격(약 9억 원) 이하의 주택부터 우선 적용해 연간 5만~6만 채의 반반주택을 분양한다는 복안이다. 최재형 후보 역시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고 기부채납을 받아 청년·신혼부부에게 반값으로 주택을 공급하는 공약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야권의 부동산 공약이 시장 기능 자체를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반값, 4분의 1값 주택 등은 형평성 문제만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택을 반값이든 반의 반값에 도심에 공급하면 몇 명이나 수혜를 보겠느냐”며 “‘로또’ 아파트만 재연되고 시장의 공급 원리만 저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 도심에 반값에 받는 사람은 로또지만 결국 재정을 부담하는 사람은 국민”이라며 “정책이 아닌 로또가 되고 국민 허리만 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후보들이 부동산 공급 물량 역시 과도하게 부풀려서 발표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후보는 임기 내 250만 채 이상, 최 후보는 200만 채의 공급을 약속했다. 여권 후보(250만~280만 채)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이다. 특히 이 지사가 ‘기본주택 100만 채’를 공약했을 당시 유승민 후보는 “저런 유토피아는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돈이 없어서 못해낸 일”이라고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이후 유 후보는 “수도권에 민간주택 100만 채를 최대한 빨리 공급하겠다. 공공임대주택도 50만 채를 건설하겠다”는 내용의 부동산 공약을 내놓았다. 부족한 신규 택지와 재건축·재개발에 들어가는 시간을 고려할 때 임기 내에 실현 불가능한 공약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국민의힘 후보들이 너도나도 빈 수레를 울리자 서로의 공약을 저격하는 자중지란까지 벌어지고 있다. 유 후보 캠프의 유경준 의원은 윤 후보의 ‘원가주택’을 두고 “청년 원가주택 정책에는 2,000조 원의 국가 재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윤 후보 측의 경제정책을 맡은 윤창현 의원이 나서 “왜곡된 허위 주장으로 청년들의 희망을 꺾어놓으려는 네거티브에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맞섰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표를 의식해서 내놓은 대책 말고 구체적으로 실현 가능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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