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의 위험이 고조되던 1938년. 아서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다급한 마음에 독일로 날아가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과 만났다. 체임벌린은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 지방을 합병하는 것을 묵인하는 대가로 영국·독일·프랑스 3국 간의 불가침조약을 맺는 것을 골자로 하는 뮌헨협정을 체결했다. 체임벌린은 유화정책으로 독일의 팽창을 저지했다고 생각했다. 독일의 도발이 거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물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체임벌린은 ‘영국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는 히틀러의 거짓말에 속아 협정을 맺었다. 체임벌린의 오판은 불과 몇 개월 뒤 전 세계를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내모는 결과를 가져왔다. 전체주의국가에 양보한 대가가 어떤 것인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례다.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2차 세계대전 직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기는커녕 핵개발 능력을 되레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틈만 나면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에 대한 의지가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번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동향 보고서를 통해 드러난 북한의 영변 핵시설 재가동 문제만 하더라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위반한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그 흔한 유감 표명 한마디 없이 입을 닫고 있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정부가 북한의 핵 활동을 인지하고서도 이에 대한 아무런 조치 없이 남북 통신선 복원에만 열을 올렸다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아무런 실효성 없는 통신선 복원에 대해 호들갑을 떨었으니 국민들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인 것이나 다름없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후에도 북한의 한반도 적화통일 야욕은 더 거세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지난 1월에 개정된 북한의 ‘조선노동당 규약’만 봐도 알 수 있다. 노동당 규약은 북한의 당면 목적을 ‘전국적 범위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있으며 최종 목적은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고 명시해 놓고 있다. 여기서 ‘전국적 범위’라는 것은 남한을 포함하는 개념이고 민주주의는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의미하기 때문에 결국 대남 적화통일이라는 기존 노선에는 변화가 없는 셈이다. 오히려 2010년에 삭제됐던 ‘공산주의’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한 점을 보면 대남 적대정책은 더 강화됐다고 봐야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 정부는 한가하게 대화·협력 타령만 늘어놓고 있다.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 재가동 이슈가 불거진 가운데서도 성 김 미국 대북 특별대표에게 남북 협력사업 협조를 요청했고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대북 제재와 별개로 인도적 협력은 계속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행보 속에는 가장 큰 위협 요인인 북한 핵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핵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우리 민족끼리 잘 지내보자’는 식의 대화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이런 한심한 대북 정책은 문재인 정부에서만 있는 현상은 아니다. 진보 정권만 들어서면 어김없이 벌어지는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은 핵무기를 제조할 능력도, 필요도 없다”는 김일성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한에 핵무기가 있어도 한국은 우월적 군사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4차원적인 주장을 하기도 했다.
지금 한반도 정세는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이 격화되면서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미중 공조가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미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후 아프가니스탄 철군에 따른 후유증 수습과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확산 대응 등 현안 때문에 북한 핵 문제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둘 형편이 되질 않는다. 이런 때에 우리마저 북한 비핵화에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북한의 핵 인질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 북한이 핵을 갖고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 됐다. 우리도 이에 맞설 수 있는 대응 카드를 모색해야 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거론되는 전술핵 재배치도 그중의 하나다. 핵 균형 없는 어설픈 유화정책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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