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조 원에 이르는 ‘한국판 뉴딜펀드’ 운용을 맡을 금융회사인 한국성장금융 투자 총괄 책임자에 금융 문외한인 청와대 행정관 출신이 내정됐다. 한국성장금융은 중소·벤처기업 성장을 돕기 위해 2016년 산업은행·기업은행 등이 주요 주주로 참여해 설립한 사실상의 공기업이다. 정부는 민간자금 13조 원과 혈세를 매칭해 뉴딜펀드를 만든 뒤 이 회사를 통해 정보통신기술(ICT)과 신재생에너지 등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코로나19로 풀린 유동성을 생산적인 곳에 돌리겠다는 취지인 만큼 최고의 운용 전문가가 필요했다.
한국성장금융이 16일 주주총회에서 투자운용2본부장으로 선임할 예정인 황현선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은 더불어민주당 사무처 당직자 출신으로 자산 운용 경험이 전무하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일한 뒤 조국 전 민정수석 밑에서 근무했는데 2019년 은행들이 출자해 만든 구조조정 전문 기업 유암코의 상임감사로 임명될 때도 ‘낙하산’ 인사 논란을 빚었다. 더욱 황당한 점은 주주인 산은과 금융 당국이 이번 인사를 사전에 몰랐다는 것이다. 정권의 대단한 뒷배가 있지 않은 한 이런 식의 막무가내 인사는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금융 산업은 관치·정치의 놀이터로 전락했다. 출범 직후부터 노무현 정부 장·차관 출신들이 금융 공기업과 민간 금융협회 수장을 줄줄이 차지했다. 지난해 4·15 총선 전후에는 낙천·낙선자들이 국민연금 등 노른자위 자리를 꿰찼다. 또 실패한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의 설계자를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에 임명하는 등 금융 외 분야에서도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를 밀어붙였다.
외환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각국은 금융 산업의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중국 등 강국은 물론 신흥국까지 세계적 자산운용사와 국부펀드를 키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리는 글로벌 무대에서 내로라하는 금융회사가 한 곳도 없는데 정치권은 단맛만을 챙기는 데 여념이 없다. 환란 이후 국민들이 수백조 원의 혈세를 들여 금융회사를 살린 것은 뉴딜펀드 운용사의 몰염치한 인사와 같은 ‘막장 금융’을 보려 했던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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