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과 영국·캐나다 등의 물가 상승 추세가 뚜렷해지면서 미국에서 시작된 인플레이션이 선진국 전반으로 확산되는 조짐이다. 저금리와 돈 풀기, 코로나19 보조금 등 재정 투입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큰 상황에서 상품과 서비스 수급 불균형에 의한 물가 상승이 겹쳤기 때문이다. 자칫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완화 기조를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순간이 빨리 올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7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유로존과 영국·캐나다·뉴질랜드·호주 등은 각국 중앙은행이 설정한 목표치를 뛰어넘은 물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유로존 19개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3% 상승했다. 이는 10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중앙은행(ECB)이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압력을 받게 됐다”고 진단했다.
캐나다와 호주는 이미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응해 긴축을 시작했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지난 4월 국채 매입 규모를 축소했고 호주 중앙은행은 9월부터 정부 발행 채권 매입 규모를 줄이기로 했다. 영국 중앙은행도 자산 매입 목표에 도달한 뒤에는 돈 풀기를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 NYT는 “소비자 수요 증가, 기업의 공급 부족과 코로나19 관련 각종 요인들이 결합돼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선진국들의 최근 물가 상승에는 소비자가 사고 싶어하는 것과 기업이 공급하는 것 사이에 불일치가 존재한다는 것이 공통점"이라면서 “각국의 부양책으로 물가 상승이 증폭된 면은 있지만 정책의 결과로만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선진국들의 최근 물가 상승에는 수요 폭발과 글로벌 공급망 붕괴가 큰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영국 중앙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크리스틴 포브스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이런 종류의 물가 상승은 일시적일 수 있는데 결국 가장 중요한 질문은 현재의 공급망 압력이 언제까지 갈 것인가 하는 것”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선진국의 인플레이션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했다. NYT는 “이런 현상을 해결하려면 고통스러운 통화정책을 쓸 수밖에 없다"며 “이는 한 나라의 경제를 다시 불황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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