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급증한 닭고기, 그저 싸져서?
알고보면 사료 효율 높아진 영향
기대수명·유아 사망률 고려하면
미국도 '대단한 나라' 인정 어려워
백신의 경제성·태양광 발전량 등
71가지 질문 숫자로 풀며 객관화
닭고기 소비량이 증가세다. 미국인의 육류 소비에서 닭고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1976년 20%에 불과했으나, 2018년에는 36%로 늘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1980년부터 2018년까지 1인당 소비량 증가율이 가장 큰 육류는 닭고기였다. 1980년에 1인당 2.6㎏에서 2018년에는 소비량이 12.7㎏으로 늘었다.
왜 닭고기 소비가 이렇게 많이 늘었을까? 쉽게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맛있으니까”이다. 물론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객관적인 답은 아니다. 경제적 관점에서는 “싸기 때문”이라는 답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명확한 답은 아니다. 왜 더 저렴할까. 소비량이 적었던 과거에는 닭고기가 저렴하지 않았던 것일까. 곰곰이 생각할수록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캐나다 매니토바대 명예교수인 바츨라프 스밀은 통계와 숫자로 이 문제를 생각해보도록 권한다. 우선 사료 효율이다. 사육법의 발달로, 닭고기의 사료 효율이 크게 높아졌다. 현재 사료가 고깃살로 전환되는 평균 효율은 닭이 15%, 돼지고기는 10%, 쇠고기 4%다. 사육 기간도 줄어들었다. 과거 방목 시기에는 닭이 완전히 크는데 1년에 걸렸지만, 1925년엔 112일, 2018년에는 불과 47일로 짧아졌다. 이에 따라 육류 시장에서 구이용 쇠고기 사태는 파운드당 4.98달러에 팔리는 데 반해 닭가슴살은 2.94달러에 판매가 가능해진 것이다. “싸기 때문”이라는 답은 두루뭉술하지만 숫자가 들어가는 순간 답은 한결 명확하고 탄탄해진다. 스밀은 신간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원제 : Numbers don’t lie)’에서 이렇듯 숫자의 힘을 보여준다.
스밀은 빌 게이츠가 오래 전부터 ‘가장 좋아하는 사상가’라고 여러 차례 꼽았던 석학이다. 경제사학자이자 환경 과학자로서 에너지, 환경, 식량, 인구, 경제, 역사, 공공 정책까지 넘나들며 광범위한 연구를 해온 학자다. 게이츠는 이 책에 대해서도 지난 8월 자신의 개인 블로그 ‘게이츠 노츠’에 별도의 소개 동영상까지 올리면서 일독을 권한 바 있다. 게이츠는 책이 스밀의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일반 독자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수준이라며, 그래서 ‘매력적’이라고 적극 추천했다.
책은 △사람 △국가 △기계·설계·장치 △연료와 전기 △운송과 교통 △식량 △환경과 관련된 71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담고 있다. 당연히 모든 답은 숫자와 통계로 뒷받침된다.
‘왜 닭이 대세인가’라는 질문을 사료 효율과 양계 기간에 관한 수치로 풀어냈듯이 ‘미국은 정말 예외적인 국가인가’이라는 질문에는 기대 수명, 유아 사망률, 비만, 행복 점수 등을 근거로 ‘글쎄’라는 답을 내놓는다. 신생아 1,000명 당 유아 사망률은 독일, 영국이 3명인 반면 미국은 6명이나 된다. 스밀은 “시민이 깨끗한 주택에 거주하며 고등교육을 받고 영양 상태 좋은 부모가 자녀에게 적절한 영양과 건강관리를 제공하는 풍요로운 국가에서는 유아 사망률이 극히 낮다”고 말한다. 또 미국의 기대 수명은 세계 28위에 그치고, 행복 점수도 19위에 불과하다. 비만율은 세계 1위다. GDP 규모나 핵탄두 보유 수 만으로 미국을 대단한 나라라고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스밀의 지적이다.
중국의 지속 가능 성장에 대해서도 크게 동의하지 않는다. 구매력평가지수(PPP)를 기준으로 하면 2019년 중국의 GDP는 이미 미국을 앞섰다. 하지만 빈부 격차, 대기·수질오염,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 고령화와 출산율 등이 중국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예를 들어 환경 문제의 경우 세계보건기구는 대기 1㎥가 받아들일 수 있는 미세먼지 농도가 25㎍이라고 하지만 중국의 많은 도시에서는 500㎍를 웃돈다.
세계 각국의 고민거리인 백신 접종의 필요성도 경제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백신을 제조·공급·운송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과 발병·사망을 피함으로써 얻는 수익 추정값을 비교하면, 백신 접종에 1달러를 투자할 때 마다 16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결과를 도출해낸다.
스밀은 에너지 과학자로서의 면모도 보여준다. 풍력, 태양광, 리튬이온 배터리 등의 발전 과정과 앞으로의 전망도 전한다. 태양광발전은 2000년에 세계 전기 소비의 0.01%도 공급하지 못했지만 2018년에는 2.2%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16%를 공급하는 수력과의 경쟁은 여전히 역부족이다. 무엇보다 햇빛이 좋은 일부 지역에서만 가능하다고 스밀은 지적한다.
책은 지나치게 전문적이지 않으면서 지나치게 피상적이지도 않다. 숫자에 기반 한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사회, 과학 전반에 관한 통찰의 첫걸음을 뗄 수 있게 이끌어준다. 1만8,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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