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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설
[사설] EU마저 ‘반도체 법’ 추진, 한국은 ‘무늬만 특별법’

유럽연합(EU)이 글로벌 반도체 패권 전쟁에 대응해 역내 기업들에 대한 광범위한 지원책을 담은 ‘유럽 반도체법’을 제정한다. 법적인 틀을 통해 연구개발(R&D)과 공급 체계 등 최첨단의 반도체 자립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뜻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15일 “반도체는 단순 경쟁을 넘어 기술 주권 문제”라며 ‘산업 패권’과 ‘안보’ 관점에서 접근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앞서 EU 집행위는 10년 내 세계 반도체 제품의 최소 20%를 역내에서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법제화 작업까지 진행함에 따라 패권 전쟁은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미국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백악관은 23일 글로벌 제조사들을 또다시 소집해 ‘반도체 공급망 회의’를 갖는다. ‘동맹국’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글로벌 기업들의 자국 내 투자를 채근할 것이 자명하다. 칭화유니의 파산 신청 등으로 주춤하던 중국 반도체 산업도 무섭게 부활하고 있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위탁 생산) 업체인 SMIC는 10조 원 이상을 투입해 대규모 웨이퍼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시장 조사 업체 IC인사이츠는 중국의 올해 웨이퍼 생산능력이 일본을 제치고 대만·한국에 이어 3위로 올라설 것으로 내다봤다.

주요 국가들의 공격적 움직임과 달리 우리는 기업들만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국가핵심전략산업특별법’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논의 중인 법안에는 화학물질 등록 기준 완화와 수도권 대학 정원 조정 등 기업들이 절실하게 원하는 내용이 대부분 빠졌다. 파격 지원을 외쳤지만 ‘특별하지 않은 특별법’ ‘무늬만 특별법’으로 전락한 것이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 산업은 지금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마저 초격차 기술을 장담하기 힘든 위기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20년째 세계 1위를 지켜온 메모리 반도체도 첨단 기술 양산 능력에서 미국 마이크론 등에 추월 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데도 정치권은 면피용 대책이나 내밀며 기업들에 엄청난 지원을 하는 것처럼 생색만 내니 ‘반도체 코리아’라는 말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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