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 같은 대답이 좋은가? 아니, 그거는 뻥치는 거다. TV에 나오는 장인, 뭐 그런 사람이 사명감 이야기하는 거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먹고살려고 하루하루 일하다가 정신차려보니까 세월이 지나간 것에 가깝다고 본다. 사람이 먹고살려면 돈이 필요하다. 생계는 중요하다. 누가 어떤 일을 오래 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미사여구를 깔고 싶어한다. 하지만 직업을 명분만으로 유지할 수는 없다고 본다. 젊었을 때 한번 선택한 직종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는 아마 당장 먹고사는 문제 때문일 거다. 내가 그랬고, 많은 사람이 그럴 거라 생각한다. 물론 생계가 아주 전부는 아니었다. 일을 하다보면 내가 만든 물건이 세상 어딘가에 이바지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생활인으로서 일한다는 전제는 바뀌지 않는다.”(브로드컬리 편집부, ‘목공·목수·Carpenter’, 2020년 브로드컬리 펴냄)
현병묵 명장은 열다섯 살 때부터 45년째 일하고 있는 목수이자 목공이다. 하나의 업을 어떻게 그리 오래할 수 있었을까. 자신의 기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사명감으로 단 한 번도 곁눈질하지 않은 우직한 장인의 모습이 연상되지만, 현 명장은 그건 ‘뻥’치는 거라고 단언한다. 사명감보다 무겁고 절박한 것은 생계였고 생활이었다. 국무총리상까지 수상한 제주의 이름난 명인이지만, 상을 받은 후 수입은 오히려 줄었다. 그가 만든 가구 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쌀까 지레 걱정해서 도리어 의뢰를 덜 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상은 상이고 삶은 삶이다’라고.
명예나 사명감 같은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추상적이지만, 하루하루의 생계와 일상은 눈앞에 닥친 현실이었다. 그리고 현 명장은 생계의 무게로 세계를 완성한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생활인이다. 거창한 사명감이나 책임감만으로 일한다는 건 ‘뻥’이고 허튼소리다. 연휴는 지나갔다. 우리를 붙들어놓고 끝내 일하게 하는 그 절박하고 끈질긴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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