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유행성 출혈열 백신을 개발한 이호왕(93·사진) 고려대 명예교수가 23일 글로벌 학술 분석 정보 기업 클래리베이트애널리틱스가 선정한 노벨상 유력 후보 16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이 교수는 클래리베이트가 공개한 노벨상 수상 예측 후보 명단에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포함됐다.
클래리베이트는 이날 “이 교수가 칼 존슨 미국 뉴멕시코대 명예객원교수와 함께 한탄바이러스의 발견과 신증후군출혈열(HFRS) 연구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이 유력시된다”고 발표했다. 이 교수는 지난 1976년 세계 최초로 유행성 출혈열 병원체를 발견해 ‘한국의 파스퇴르’라고 불린다. 1950년대 6·25전쟁 당시 휴전선 인근에 참전 중이던 유엔군 3,000여 명이 원인 불명의 병에 걸려 피를 쏟고 쓰러졌고 이 가운데 수백 명이 사망했다. 이 교수는 이후 20년이 지난 1976년 들쥐에서 나온 바이러스가 이 병의 원인이었다는 것을 밝혀낸 후 한탄강의 이름을 따 ‘한탄바이러스’라고 이름 지었다. 이 교수는 1989년에는 국내 제약사 녹십자와 함께 세계 최초로 한탄바이러스 예방 백신인 ‘한타박스’도 개발했다. 한타박스는 대한민국 국산 신약 제1호다.
이 교수는 함흥의과대를 다니다가 월남해 1954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다. 1954~1956년 육군 중위로 복무한 후 미국으로 유학해 1959년 미네소타주립대 미생물학과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9년 미 육군성의 지원을 받아 유행성 출혈열 연구를 시작해 한탄바이러스를 발견했다.
이 교수는 “1970년대 한국은 연구에 있어 후발국의 위치에 있었고 이 환경에서 연구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내 연구가 세계의 출혈성 질환의 원인 바이러스를 규명하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연구원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나아가 인류 건강을 지키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클래리베이트는 2002년부터 생리의학·물리학·화학·경제학 분야에서 논문이 다른 학자의 논문에 2,000회 이상 인용된 상위 0.01%의 우수 연구자들을 노벨상 수상 후보로 선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후보로 지목한 연구자 376명 중 59명(16%)이 실제로 노벨상을 받았다. 올해 피인용 우수 연구자로 선정된 16명 중 9명은 미국, 3명은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프랑스·이탈리아·한국·싱가포르 출신 연구자들이다. 생리의학 분야에서는 이 교수, 존슨 박사 이외에 장피에르 샹제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명예교수와 히라노 도시오 일본 양자과학기술연구개발기구(QST) 소장, 기시모토 다다미쓰 오사카대 명예교수가 후보에 올랐다.
물리학 분야에서는 알렉세이 키타예프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 교수, 마크 뉴먼 미국 미시간대 석좌교수, 조르조 파리시 이탈리아 로마라사피엔자대 명예교수가 수상 후보로 꼽혔으며 화학 분야는 배리 할리웰 싱가포르국립대 석좌교수, 윌리엄 요르겐센 미국 예일대 교수, 사와모토 미쓰오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가 수상 후보로 선정됐다. 경제학상 유력 후보로는 데이비드 오드레치 미국 인디애나대 석좌교수, 데이비드 티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하스경영대학 교수, 조엘 모키어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 카르멘 라인하트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가 각각 수상이 유력하다고 클래리베이트가 예측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