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미국 예일대 로스쿨에 재학 중이던 한 학생의 논문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1989년생인 리나 칸이 박사 과정을 졸업하며 발표한 논문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Amazon’s Antitrust Paradox)’은 기존 반독점규제법으로는 아마존 같은 공룡 정보기술(IT) 기업들의 독과점 피해를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소비자에게 값싼 물건을 제공한다는 이유로 빅테크 기업의 독점을 견제하지 않으면 더 큰 피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칸이 수십 년간 이어진 반독점법의 프레임을 바꿨다”고 평했고 칸은 ‘아마존 저격수’라는 별칭을 얻는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칸은 11세 때 파키스탄계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윌리엄스칼리지를 졸업한 뒤 공공 정책을 연구하는 싱크탱크 ‘뉴아메리카 파운데이션’에 다니면서 반독점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어 예일대 로스쿨에 들어가 빅테크 기업들의 독과점 문제를 파고들었다. 이때부터 진보 성향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과 친분을 맺었다. 졸업 이후 컬럼비아대 부교수로 재직하는 동안에도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는 기업들을 비판하는 데 주력했다. 미국 하원 독점금지위원회 고문으로도 일하며 실리콘밸리 IT 기업들의 시장 내 권력 문제를 조사했고 이를 토대로 “빅테크 기업들이 미래 경쟁자인 신생 기업을 인수하는 것을 규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활약을 눈여겨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올 3월 32세의 칸을 반독점 당국인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최연소 위원장에 지명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다소 급진적인 시각 탓에 인준에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관측을 뒤집고 상원은 찬성 69표, 반대 28표라는 압도적 표 차이로 인준안을 가결했다. 시장 자율을 강조하는 미 의회도 빅테크 기업의 왜곡된 팽창을 제어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플랫폼 기업의 불공정 논란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등 관계 당국에서 칸 위원장의 논문 읽기가 확산되고 있다. 그의 논문이 플랫폼 기업에 대한 정제된 감독·규율 방식을 확립하는 데 올바른 매뉴얼이 되기를 바란다. 또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정화하고 혁신하는 데 참고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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