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아파트 매매 계약을 치러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움을 자아내던 친구 A는 기자에게 설렘보다 한숨을 전했다. 서울에 수차례 전셋집을 전전해오던 A에게 내 집 마련은 이사 해방을 의미했다. 약 한 달 뒤 대출 받아 10억대 아파트의 잔금만 치르면 드디어 A의 생애 첫 내 집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A의 발목을 잡은 건 금융당국과 은행이었다. 급증하는 가계부채로 당국의 관리 촉구에 은행들이 잇따라 대출 문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은 A에게 ‘가능한 한 빨리’ 대출을 신청하라고 조언했지만 계획된 일정을 앞당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A는 결국 한 달 뒤 대출이 될지 안 될지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비단 기자의 지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은행들이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소극적으로 취급하는 데 이어 집단대출 한도도 대폭 제한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이 같은 은행들의 조치로 당장 입주를 코앞에 둔 실수요자들이 2금융권, 사채를 써야 하느냐며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청원들이 다수 올라왔다.
대출 난민이 대거 발생한 데는 NH농협은행이 일부 대출 취급을 중단하면서 비롯됐다. 1,800조 원으로 급증한 가계부채가 향후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작동하지 않기 위해 금융 당국은 은행에 지난해 대비 연 5~6% 가계대출 증가율 관리 목표치를 제시했다. 목표치를 초과한 농협은행은 갑작스럽게 대출 문을 닫았고 이에 다른 은행으로 대출 수요가 몰리면서 대출 제한이 도미노처럼 퍼져가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일관성도, 시장원칙도 없는 대책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데 있다. 금융 당국은 그동안 과도하게 대출해주는 관행을 문제 삼아 갚을 수 있는 만큼 빌리는 대출 시스템을 정착시키겠다며 신용대출 한도를 연 소득 이내로 줄였다. 마이너스통장은 연 소득이 아무리 높아도 최대 5,000만 원을 넘을 수 없다. 실수요자를 위한 대출이라는 이유로 지난해 가계부채 대책에서 빠졌던 전세대출은 최근 규모가 늘어나면서 관련 규제가 강화되는 게 유력해졌다.
실수요자들 사이에서는 대출 계획을 미리 세워두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10월 초·중순 발표될 가계부채 추가 대책에서 이 같은 점들이 고려돼야 한다. 대출마저 운으로 결정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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