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증 환자는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 중요한 고위 인지기능인 집행기능의 손상이 나타난다. 이를 평가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검사자의 주관이 개입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강박증 환자의 인지기능을 쉽고 빠르게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눈길을 끈다.
권준수·김민아 서울대병원 교수팀은 안구운동 검사로 강박증 환자의 인지기능을 간편하게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최초로 개발해 국제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최신호에 보고했다고 30일 밝혔다. 연구대상은 104명의 강박증 환자와 114명의 일반인이었다. 이들에게 복잡한 도형을 기억하게 한 후 회상하도록 하는 레이복합도형 검사를 시행했다. 일반인과는 달리 강박증 환자는 도형을 회상해 재현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이 3분 동안 도형을 보고 외우는 동안 안구 운동검사로 눈동자 움직임을 측정했다.
그 결과 집행기능이 손상된 강박증 환자는 상대적으로 더 좁은 범위의 도형 내 구조에만 눈동자가 오래 머물렀다. 반면 집행기능이 비교적 덜 손상된 강박증 환자는 더 넓은 범위의 도형을 보면서 계획적인 암기를 하는 양상을 보였다. 즉 강박증 환자들 중에서도 집행기능 손상의 정도에 따라 도형을 외우는 동안 눈동자의 움직임에 차이가 있음이 나타났다. 단 3분 동안의 안구운동검사 시행으로 강박증 환자의 집행기능을 측정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김민아 의생명연구원 교수는 “인지기능 손상은 강박증의 원인이자 환자의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중요한 요인이다. 쉽고 빠르게 강박증 환자의 인지기능을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 검사 도구 개발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연구 의의를 밝혔다.
권준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 연구 결과가 인지기능 손상을 보이는 다른 질환에도 확대 적용되고 실제 임상에서 활용 가능한 간편한 바이오마커 기반 인지기능 평가도구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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