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능력 있는 자 먼저 부자 되라’는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으로 주요 2개국(G2)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시진핑 주석이 지난 2020년 10월 16일 19대 5중전회에서 ‘공동부유론(共同富裕論·공부론)’을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선포했다. 표면상의 이유가 여럿 있지만 경제 패러다임 전환의 본질은 체제 위기다.
중국은 황허의 범람으로 왕조의 역사가 만들어진 나라다. 황허가 흘러넘쳐 수십만에서 수백만의 유민이 생기며 남쪽의 부자를 털다가 관가를 털고 나라를 턴 것이 중국의 역사다. 부의 불평등, 더 나아가 실업이 심해지면 나라가 엎어지는 것이 중국이다. 그래서 중국의 역대 위정자들은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전복시키기도 한다면서 민중의 분노를 두려워했다.
중국이 1978년 개혁 개방 이후 지속해온 덩샤오핑의 선부론에서 방향 전환을 한 것은 소득 불평등 심화에 따른 체제 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치인 시진핑의 업적과 코로나19 사태 그리고 미중 전쟁 등 세 가지가 묘하게 맞물려 있다.
정치인 시진핑의 지난 9년간의 집권에서 최대 치적은 절대 빈곤을 없앤 소강사회(小康社會) 건설이었다. 2021년 3월 전인대에서 중국은 2012년 시진핑 집권 초기 9,988만 명에 달했던 절대 빈곤 인구를 2020년에 0으로 만들었다고 선포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K자 경기회복 패턴이 나타나면서 이것이 다시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사회 전체의 실업률은 5%대지만 16~24세 청년 실업률이 15%대로 올라섰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들의 실업이 심각하다. 2022년 20차 당 대회에서 3연임을 해야 하는 시 주석의 정치 업적에 결정적인 흠집이 나게 생겼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더 이상 수출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을 절감한 중국은 내수 중심으로 경제의 방향을 틀었다. ‘쌍순환 경제’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걸었지만 본질은 미중 무역전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내수 중심의 성장을 이루겠다는 말이다.
부의 불평등이 확대되면 사회의 소비 능력은 필연적으로 떨어진다. 9,988만 명에 달했던 절대 빈곤 인구를 겨우 없앴는데 코로나19로 다시 절대 빈곤 인구가 생겼다. 그리고 주식시장과 자산 시장의 버블에 힘입은 고소득 계층의 부는 더 커져버렸다. 포브스 100대 부호 중 20명이 중국인 부자들이고 1위인 종샨샨 농푸산위안 회장은 세계 18위에 랭크돼 있다. 공유제라는 중국에서 상위 1%의 소득이 하위 50%의 소득보다 커지자 부의 불평등에 대한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40여 년간의 선부론으로 중국 경제의 몸집은 커졌지만 도시와 농촌 간 소득 격차는 1978년 2.6배에서 2020년에도 2.6배다. 상대적 격차는 개선되지 않았다. 소득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0.5 이상이면 전쟁, 0.4면 위기 상황이라고 하는데 지금 중국은 0.47로 위기 상황이다.
중국의 플랫폼 기업 제재는 미중 전쟁에 대비한 고단수 전략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는 알리바바 등 플랫폼 기업에 대한 제재를 계기로 공동부유론을 들고 나온 중국을 ‘공동빈궁론(共同貧窮論)’이라고 비판하고 민영 기업 죽이기는 결국 자살골이 돼 중국 경제를 위기에 몰아넣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한다.
중국 정부는 중국 플랫폼 기업에 투자한 미국과 홍콩 투자가들을 ‘멘붕’에 빠뜨렸다. 2020년 11월 중국 금융 당국은 공모 자금 모집까지 마친 알리바바 자회사인 핀테크 회사 앤트크룹의 기업공개(IPO)를 중지시킨 것을 시작으로 2021년 4월에는 알리바바·텐센트 등 중국 플랫폼 기업을 공개 소환 조사해 반독점법 위반으로 거액의 벌금을 물렸다. 7월에는 미국 상장 3일 만에 중국 최대 공유 자동차 업체 디디추싱에 대한 네트워크 보안법 위반 조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중국 최대 딜리버리 플랫폼인 메이퇀은 노동자 보호 미흡으로, 중국 최대 온라인 교육 플랫폼인 신동방은 사교육 금지 조치로 제재를 당했다. 미국에 상장된 중국 플랫폼 기업에 투자한 투자가들은 주가 폭락으로 망연자실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세계적인 전자상거래·게임·모빌리티 회사로 부상한 중국 플랫폼 기업을 죽이는 자살골을 넣은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속내가 있다고 봐야 한다. 모든 플랫폼 기업과 관련된 일련의 조치는 시진핑의 ‘공부론’과 내수 시장 육성과 상관성이 깊다.
내수 확대를 위해서는 중산층을 늘리고 과도한 마진을 취하거나 진입 장벽을 쌓는 산업이나 업종을 없애야 한다. 인터넷 사업의 특성은 1등이 다 먹는 승자 독식 구조다. 그간 중국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은 정부가 실시한 ‘인터넷+’ 정책의 최대 수혜자였다. 규제 샌드박스로 사업을 확장하고 떼돈을 번 플랫폼 기업들에 이제 그 돈을 사회에 환원하라는 얘기다. 이는 인터넷 플랫폼 기업에만 해당되는 얘기일 뿐 다른 제조업은 대상이 아니다.
금융 시장과 인터넷 시장 개방이 미중 전쟁의 종착역이다. 지금 중국 플랫폼 기업들이 폼을 잡고 있지만 이는 정부가 만들어준 만리장성의 보호 아래서일 뿐이다. 시장이 개방돼 세계 최강인 미국 플랫폼 기업과 맞붙으면 한방에 나가 떨어지고 거대한 정보와 데이터가 미국으로 갈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결국 시장을 개방해야 하는 중국이 인터넷 서비스 시장에서 세계 최강인 미국 기업에 다 털릴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노력이 바로 중국 플랫폼 기업에 먼저 반독점범·국가보안법·네트워크보안법·데이터보안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는 플랫폼 기업을 제재해도 시장이 개방돼 있지 않아 국부 유출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중국 기업에 먼저 적용해 면역성을 키우려는 의도다. 시장 개방으로 미국 기업이 들어왔을 때 지금 중국 플랫폼 기업을 때려잡듯이 미국 기업에도 반독점범·국가보안법·네트워크보안법·데이터보안법의 굴레를 씌우면 되기 때문이다.
공부론은 ‘중국식 중산층 만들기’
내수 중심 성장의 핵심은 소비 진작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중산층 육성이고 소득 증가와 분배 조정이다. 위기를 느낀 중국 당국이 경제 패러다임을 슬그머니 바꾸고 강력한 분배 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공동부유라는 어젠다 설정과 △분배 구조 조정 △고부가가치와 신규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신성장 산업 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중국은 공부론을 실천하기 위해 중산층 만들기의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다. 첨단 기술 산업을 만들어 노동 소득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첨단 신기술 산업 육성과 발굴이 공부론의 첫째 목표다.
둘째는 이전 소득 증가다. 조세 형평과 합리적인 보조금 지원을 통해 이룰 수 있다. 셋째는 민생 서비스의 원가를 낮춰 구매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에 따라 독점적 지위를 갖거나 데이터를 장악해 알고리즘 마케팅으로 진입 장벽을 만들고 과도한 수익을 올리는 산업을 규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과 의료·양로 등 사회복지 비용을 대폭 낮춰 실질적인 가처분 소득 증대 효과를 늘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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