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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은 데이터 기반”…파월의 단어가 조금씩 변한다 [김영필의 3분 월스트리트]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인플레가 일시적이라는 주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자신감이 떨어진 듯하다. /AP연합뉴스




30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증시는 공급망 문제와 국채금리 상승 여파가 지속하면서 일제히 하락했는데요.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1.59% 내린 것을 비롯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나스닥도 각각 1.19%, 0.44% 떨어졌습니다.

이날 미 의회는 연방정부 셧다운(폐쇄)을 몇 시간 앞두고 12월3일까지의 임시 예산안을 통과시켰는데요. ‘3분 월스트리트’에서 전해드렸듯 상대적으로 작은 임시예산안 문제에서 일단 한숨을 돌렸으니 정치권은 부채한도 상향과 복지 인프라 투자계획 처리에 집중할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은 어제부터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인식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여전히 큰 틀에서는 ‘일시적’이라는 주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자신감이 줄어들고 있는데요. 최근 연준과 파월 의장에 대한 분석을 많이 한 만큼 오늘은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고물가+상대적으로 높은 실업률에 트레이드 오프…공급문제 우리가 통제 못해, 언제 정상화할지 예측 어려워”


이날 파월 의장은 하원의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했습니다. 이번 주 상원 청문회에 이은 두 번째인데요. 그는 “우리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완화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며 “왜냐하면 높은 물가를 야기하는 것들은 일시적이고(temporary) 팬데믹 상황에서의 경제활동 재개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파월 의장은 분명히 ‘temporary’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가면 힘이 빠지기 시작합니다. 그는 “언제 그런 일(물가상승세 역전)이 일어날지 콕 짚기는 어렵다”, “물가상승은 공급측면의 병목현상에 따른 것으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고 했죠.

하나하나 보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공급난만 해도 연준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를 감안한 경제예측을 하고 통화정책을 펴야 하지요. 족집게처럼 다 맞힐 수는 없지만 그 부근 어딘가에는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을 보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 롱비치항 앞바다에 입항을 기다리는 컨테이너선들이 떠 있다. 파월 의장은 공급문제는 우리가 해결할 수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는데 이는 자신들이 공급난을 간과했다고 시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뿐만이 아닙니다. 파월 의장은 만약 인플레가 완화하지 않으면 내년에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토로했는데요. 내년에 물가가 높으면 금리를 올려서 대응해야 하는데 실업을 고려하면 긴축을 할 수 없는 딜레마라는 겁니다.

그는 “완전고용에서 아직 거리가 있는데 이는 완화적 통화정책을 쓸 요인”이라며 “인플레는 타깃을 꽤 웃돌고 있어 그것이 우리가 처한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인플레가 저절로 떨어진다면 고용시장이 안 좋은 상태에서 물가를 잡기 위해 경기를 둔화시킬 수 있는 금리인상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덧붙였는데요.

뒤집어 보면 인플레이션이 떨어지지 않을 경우 물가대응용 금리인상에 경기가 급격히 나빠질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파월 의장은 이를 두고 어려운 트레이드 오프(trade off)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요. 트레이드 오프란 하나의 정책을 선택하면 다른 목표가 희생되거나 달성이 늦어지는 경우를 말합니다.

결국 금리인상도 일정 부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금리를 올릴 생각이 전혀 없다면 트레이드 오프 상황을 고민할 까닭이 없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파월 의장이 실업률이 증가하면서 인플레가 계속 높으면 연준이 내년에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 있음을 인정했다”고 분석했는데요.

눈여겨 볼 것은 뉘앙스 변화입니다. 며칠 새 파월 의장은 인플레와 관련해 ‘더 길고 오래 갈 것’→‘공급대란에 좌절. 인플레 내년까지 간다’→‘내년에 인플레 완화하지 않으면 어려운 상황 맞을 수 있다’로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공식발표를 앞두고 분위기를 다져가는 측면도 있지만 물가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는 것은 결국 금리인상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뭔가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이죠.



“데이터 기반의 한계”…“중앙은행에 심각한 의문” 지적도


그럼 연준은 왜 이러는 걸까요. ‘3분 월스트리트’에서 질의응답을 전해드린 적 있는 클라우디아 삼 전 연준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은 데이터 중심적”이라며 “세상이 바뀌면 연준의 이야기(내러티브)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두 가지 포인트가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데어터, 즉 숫자를 중심으로 상황을 판단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물론 기업가와 경제계 관계자, 언론에서 더 많은 정보와 밑바닥 상황을 전해듣지만 기본적으로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책을 짠다는 것이죠.

이러다 보면 적지 않은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데이터, 즉 과거는 미래를 예측하는 중요한 수단이긴 하지만 항상 세상이 그렇게 되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데이터가 모든 것을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에너지와 농산물처럼 변동성이 큰 항목을 뺀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만 따지다 보면 현실 상황과 괴리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연준이 공급 문제를 놓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데이터가 바뀌면 언제든 연준의 스탠스가 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숫자를 보고 판단을 하니 숫자가 달라지면 파월 의장의 발언도, 정책방향도 달라지는 것이죠. 이는 연준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지금도 인플레가 금세 잦아들 것이라는 인식에서 조금씩 후퇴하고 있지요.

워싱턴의 연준. 거시경제 판단은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겸손해야 한다. /로이터연합뉴스


큰 배가 선회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듯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연준이 방향을 틀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파월 의장의 발언도 큰 틀은 유지하면서 조금씩 변합니다.

아직 연준이 지금까지의 전략을 큰 틀에서 수정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이 틀릴 가능성을 대비해 테이퍼링을 준비하고 있죠. 다행히 방향을 상당 부분 틀기 전에 인플레가 잦아들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듯 지금 가던 길로 갈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이같은 상황은 큰 비용을 요구합니다. 모건스탠리에서 아시아 회장을 지낸 스티븐 로치는 이날 경제 방송 CNBC에 스태그플레이션이 찾아올 수 있다면서 “연준이 이미 인플레 압력이 사라질 것이라는 견해에서 뒷걸음질치고 있다. 이는 중앙은행의 정책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지적했는데요. 연준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퍼지면 인플레 기대가 크게 오르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핵심은 연준도 틀릴 수 있다는 겁니다. 지난 7월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연준이 인플레를 6개월 간 오판했다”고 직격탄을 날린 바 있는데요. 지나고 보니 진실은 서머스 전 장관 쪽에 좀 더 가까웠던 셈이죠.

연준과 전문가의 말(언론 포함)을 기본적으로 믿으면서도 합리적인 의심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클라우디아 삼은 “거시경제 전망을 위해서는 겸손해야 한다”고 했는데요. ‘3분 월스트리트’도 100% 정확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중요 포인트는 제대로 짚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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