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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화려하지만 기괴하고 우울한 '판타지 록 오페라'… 심연의 어두움 담다

■부산국제영화제서 국내 첫선, 레오스 카락스 '아네트'

영화 내내 노래하는 뮤지컬 영화…독특하면서 도전적

카락스 "밴드 '스파크스'로부터 영감 받아 만든 프로젝트"

코로나19 락다운 기간 홍상수 영화 많이 봤다 말하기도


“그럼, 시작할까요?”(So, may we start?)

화면이 밝아지자 녹음실 스튜디오 바깥에서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나타나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영화에 온전히 집중해 달라. 노래하고 웃고 박수치고 우는 일은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쇼가 벌어지는 동안 숨도 쉬지 말라’는 내레이션으로 긴장감을 끌어올린 터. 그의 말과 함께 결성 50년이 넘은 미국의 형제 듀오 밴드 ‘스파크스’(Sparks)가 연주를 시작한다. 영화 ‘아네트’는 이렇게 관객들에게 쇼라는 점을 주지시키는 데서 시작한다. 관객들은 약 140분의 러닝타임 동안 그저 카락스의 비현실적이면서도 화려한 색채를 담은 미장센과 영상, 15곡의 다양한 노래가 어우러진 뮤지컬을 즐기면 된다. 카락스의 말을 빌자면 이건 그저 ‘하나의 판타지’다.

영화 ‘아네트’의 시작을 알리며 주요 배우들이 ‘So, May We Start?’를 부르는 모습. /사진 제공=부산국제영화제




카락스가 2012년작 ‘홀리 모터스’ 이후 약 10년만에 발표한 ‘아네트’가 6일 개막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통해 국내 관객들에게 처음 선보였다. 이 작품을 들고 BIFF를 찾은 카락스 감독은 10일 부산 KNN시어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부산에 지금 막 도착했다”며 “소감은 시간이 지나야 답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오게 돼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영화는 오페라가수 안(마리옹 코티아르 분)과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아담 드라이버 분)가 미국 LA에서 만나 결혼한 후 아네트라는 딸이 태어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폭력적 충동 때문에 자신은 물론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들까지 파멸로 이끌었던 한 남자에 관한 비극적 뮤지컬이기도 하다. 카락스는 “아주 나쁜 아빠에 대한 이야기”라고 간단히 말했다.

‘아네트’는 거의 모든 대사를 노래로 처리하는 뮤지컬 영화라는 점에서 공개 전부터 주목을 끌었다. 카락스는 스파크스가 미리 만든 노래를 바탕으로 이들과 함께 각본을 만들었다. 그는 “스파크스로부터 영감을 받아 완성한 프로젝트”라며 “평소 음악과 함께 영화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스파크스 측에서 먼저 연락해왔고 그들이 준비한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정말 좋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서 흐르는 노래와 가사들은 영상과 함께 독특한 정서를 강하게 환기하는 역할을 한다.

영화 ‘아네트’ 스틸컷. /사진 제공=부산국제영화제




카락스 감독은 작품 공개 후 외신에서 꿈꾸는 듯 초현실적이면서 정신을 홀리는 아방가르드한 록 오페라 한 편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장면마다 눈에 띄는 화려한 색채를 활용한 기괴하지만 아름다운 장면들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영화 속 이미지를 비롯해 연기, 연출 등이 모두 과잉됐다 느낄 수 있지만 뮤지컬, 연극적 요소로 녹이며 거부감을 줄인다. 이런 화려함은 작품 중반 안과 헨리가 요트를 타고 바다에 나가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특히 아담 드라이버는 작품 속에서 어두운 심연에 빠져 폭력적이면서도 우울한 모습을 연기하면서 강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카락스 감독은 “영화 속에서 심연에 대한 동정과 공감을 다루고 싶었다”며 이를 ‘높은 곳에 올라가 아래의 물속을 보면 떨어져 버릴 것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부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그 아래를 꼭 쳐다 봐야 하는 것이어야 하나 싶다”고 덧붙였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10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아네트' 기자회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한편 카락스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영화 ‘아네트’ 외에도 다양한 사안에 대한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영화를 제작한데 대해 “촬영을 마치니 프랑스에서 곧바로 락다운이 시작됐고, 운 좋게도 프랑스를 떠나 여러 달에 걸쳐 편집과 사운드 작업을 했는데, 매우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냉소적이면서 슬프기도 하지만,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플랫폼에서 영화가 상영되며 많은 이득을 얻었다. 집에만 오래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60대에 접어든 카락스 감독은 “더 이상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고 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는 “어릴 적엔 나쁜 영화도 보고 잘 만들어지지 못한 작품에서도 영감을 얻었지만 요즘은 좋지 않은 영화를 보는 게 시간낭비라 생각한다”며 “좋은 영화가 점점 드물어진다”고 전했다. 코로나19로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한국의 홍상수 감독 작품을 많이 봤다는 경험도 얘기했다. 카락스는 홍 감독에 대해 “2~3년에 6편을 낼 정도로 다작을 하시더라”며 “배우들도 이름이 기억나진 않지만 연기가 상당히 좋았다”고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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