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증시의 주요 지수는 주요 기업의 실적이 좋게 나오고 생산자물가(PPI)가 시장 예상보다 다소 낮고 신규 실업급여 청구건수가 30만 건을 밑돌면서 일제히 올랐습니다.
다만, 여전히 인플레이션이 큰 이슈입니다. 앞서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연준이 물가관리라는 본연의 업무보다 기후변화 같은 사회적 문제에 신경쓰고 있다며 통제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는데요.
그런데 인플레를 두고 미국서 다양한 얘기가 쏟아집니다. 그중 하나가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지낸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인데요. 그가 자신의 트위터에 “인플레와 공급망 문제는 상류층(high class)의 문제”라고 한 것이 오늘 내내 논란이 됐습니다. 인플레가 정치적 문제로 비화하고 있는데요.
그동안 인플레 얘기를 상당히 많이하긴 했지만 오늘 다룰 내용은 백악관이 인플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연준은 왜 인플레가 일시적이라고 생각하는지, 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머뭇거리는지에 대한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배경을 알면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를 전망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겁니다.
전해드릴 내용을 저도 다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 편히 읽으시면서 이런 측면도 있구나 하시면 좋겠습니다.
퍼먼 교수 트윗, 리트윗한 비서실장…상류층 문제 vs 전국민 세금
퍼먼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대부분의 경제적 문제들(인플레이션, 공급망, 기타 등등)은 상류층의 문제들이다. 만약 실업률이 여전히 10%였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공급망은 그렇다치고 물가상승 문제가 상류층 문제라는 말에 엄청난 댓글들이 달렸는데요. “음식을 사먹지 않고 대중교통 안 타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같은 비아냥과 “주유소와 식료품점에서 돈을 더 내는 싱글맘에게 이런 얘기를 해보라”는 격앙된 반응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로널드 클라인 백악관 비서실장이 퍼먼 교수의 글을 전날 밤 늦게 리트윗하면서 공감한다는 식의 반응을 한 것인데요. 뉴욕포스트는 “클라인 비서실장이 이같은 주장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이며 미국인들의 긴급한 문제를 경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실제 비서실장의 리트윗은 정치적 문제로 비화하는 중입니다. 공화당에서는 “인플레는 상류층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미국인들 고정수입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세금”이라고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보수성향의 폭스뉴스는 “백악관이 공감능력을 잃었다”는 얘기도 했는데요.
퍼먼 교수의 의중을 헤아려보자면(그가 긴 말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인플레와 공급대란의 문제는 소비능력을 갖춘 상류층에게 주로 적용되는 얘기라는 겁니다. 현재 미국은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고용이 500만 명가량 적은 상태인데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최고 국정목표는 중산층 복원입니다. 중산층 되살리기에 맞춘 외교와 통상, 경제정책을 펴겠다는 게 바이든 대통령의 뜻입니다. 그런데 인플레가 상류층의 문제라고 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습니다. 고용이 더 개선될 때까지 최대한 완화적 통화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계산이 나오게 됩니다. 금리인상은 물가를 잡지만 고용을 잡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높은 인플레 수치가 나오더라도 “이건 상류층 문제니까 좀더 버텨도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인데요.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은 그렇다고 쳐도 기준금리 인상은 백악관이 최대한 늦추는 것을 원할 수 있다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물론 지금은 인플레와 공급난이 워낙 정국을 압도하고 있지만요.
어쨌든 퍼먼 교수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 CEA 위원장이었고,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부통령이었습니다. 비서실장이 이를 리트윗했다는 건 어느 정도 동의한다는 것이고 대통령에게 이를 전할 수도 있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인플레가 상류층 문제라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당장 기름과 식료품값이 오르면 저소득층에게 더 큰 부담이 되지요. 부동산 같은 자산이 많은 상류층과 달리 저소득층은 상대적으로 계속 빈곤해집니다.
하지만 민주당 내, 그리고 백악관에서 이렇게 보는 시각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게 의미가 있겠습니다. 백악관의 고용에 대한 의지가 우리 생각보다 더 강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인플레는 전월 대비로 보는 게 낫다?”
또 한 명의 논쟁의 인물은 전직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코노미스트인 클라우디아 삼입니다. 그는 경기침체를 가늠하는 ‘Sahm rule’로 유명한데 뉴욕타임스(NYT)와 블룸버그에 글을 쓰고 있기도 합니다. ‘3분 월스트리트’에서 그의 인플레에 대한 생각을 전해 드린 적도 있지요. 그는 공급문제는 해결될 것이며 인플레는 일시적이라는 입장인데 최근에는 한 발 더 나아가 “인플레는 긴급한 문제가 아니다(Inflation is not the emergency)”라며 상당히 도발적이며 논란이 될 수 있는 얘기를 합니다.
삼은 “인플레이션은 중요하다. 자동차, 전자제품, 생활용품 등 많은 것들의 가격이 올랐다”면서도 “하지만 인플레는 내려가고 있다. 전월 대비-전년 대비보다 현상황을 더 잘 보여주는 지표-로 보면 6월에 정점을 찍었다”고 했는데요. 그러면서 “9월달에도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하면 코로나 이전 평균 수준에 근접했다”며 “전체적인 인플레이션 수준은 더 높지만 식량과 에너지는 변동성이 더 큰 경향이 있고 인플레가 어디로 향할지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더 적게 말해준다”고 덧붙였습니다.
즉 전월 대비로 보면 9월 수치는 계절조정 기준 0.2% 증가인데요. 4월(0.9%)과 5월(0.7%)을 지나 6월(0.9%)까지 높은 수치를 찍은 이후에는 7월(0.3%), 8월(0.1%) 등으로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삼이 얘기한 것은 이 부분인데요. 그는 “수요는 인플레이션에 중요하다. 올 봄 소비자들이 비싼 내구재를 사들였다”며 “이는 인플레이션 급등과 동시에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내구재는 계속 사는 게 아니니까 그 이후로는 낮아지고 있다는 뜻일텐데요.
그는 “인플레이션은 통제가 불가능한 게 아니며 내려오고 있다. 일시적이라는 말의 의미가 6개월인지, 12개월인지는 긴급한 게 아니”라며 “실제 위급한 것은 팬데믹”이라고 했습니다. 팬데믹이 해결되면 공급난과 노동공급 부족이 해결되면서 인플레도 풀릴 수 있다는 인식이 담겨있다고 보입니다.
삼은 정통 경제학에서 매우 중시하는 인플레이션 기대에 대해서도 일반 사람들이 몇 년 뒤의 인플레를 어떻게 예측하느냐, 연준이나 전문가들이 알려주는 대로 보는 측면이 강하다는 입장입니다. 소비자들이 물건가격을 두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점도 알고 있다고도 합니다.
특히 그는 진작부터 인플레이션을 경고하면서 연준을 질타한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는데요. 서머스의 인플레 진단이 맞지 않을 뿐더러 경제(정확히는 고용과 저소득층)에 좋지 않은 금리인상을 불러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특히 서머스와 올리비에 블랑차드가 2019년에는 연준의 2% 물가목표가 너무 낮다며 4%를 요구했다는 점을 거론합니다. 그때 그랬던 이들이 지금은 매파가 됐다는 거지요.
물론 그의 생각에 대해서는 반론이 많습니다. 우선 전월 대비가 낫다는 것에 대해 월가의 한 관계자는 “연준도 전년 대비를 많이 쓴다”며 “전년과 함께 최근 흐름을 알기 위해 전월 수치를 보는데 최근 물가가 높아진 상황에서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내려간다고 보는 시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는데요.
그럼에도 제가 클라우디아 삼의 생각을 전해드리는 것은 인플레와 그에 따른 통화정책을 논의할 때 고용과 저소득층을 중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보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또 적지 않은 논란에도 인플레는 전월 대비로도 함께 볼 필요도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연준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 이같은 얘기를 하니 연준도 이 부분을 보고 충분히 고려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전월 대비로만 보시면 안 됩니다.
9월 PPI, 전월 대비 0.5% 상승…“CPI 고려하면 기업마진 줄 수밖에 없어”
이제는 논쟁에서 내려와 현실의 수치를 살펴보겠습니다. 이날 나온 9월 PPI를 보면 전월 대비 0.5% 오르면서 시장 예상치(0.6%)를 밑돌았는데요. 에너지와 식료품을 뺀 근원 PPI는 0.2% 상승으로 전망치(0.5%)보다 꽤 낮았습니다. 이날 증시가 좋았던 이유 가운데 하나지요. CNBC는 “9월 PPI는 예상보다 적게 나왔고 투자심리에 도움을 줬다”고 했는데요.
전체적으로 PPI는 전월 대비 2개월 연속 둔화했지만 전년 대비로 보면 8.6%나 상승해 2010년 자료 집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PPI의 고공행진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뜻합니다. 최근의 흐름으로는 다소 약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전년 대비, 즉 1년이라는 기간으로 보면 상승폭이 매우 높다는 점이지요.
여기에서 하나 알아야 할 부분은 9월 CPI가 5.4%였다는 건데요. PPI와 CPI 수치를 단순계산해보면 여러 제한적 요소에도 기업들의 비용인상 분이 훨씬 크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앞으로 기업의 마진이 줄거나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건데요. 단순계산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현 추세가 이렇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오늘은 인플레에 대한 보다 다양한 시각을 전해드리려고 했습니다. 공감을 많이 받지 못하는 내용도 있지만 거시경제는 누구도 정확히 맞추기 힘듭니다. 여러 사람의 생각을 들으면서 종합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지요. 클라우디아 삼은 경제전망을 할 때 “실수에서 배우고 무엇보다 겸손(humble)해야 한다”고 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말 하나는 100%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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