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인플루엔자(독감) 예방접종이 본격 시작됐지만 곳곳의 병·원들이 독감 백신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독감 백신 공급가를 두고 제약사(도매사)와 병·의원 간 힘겨루기가 이어지는데다,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가 코로나19 백신 생산 때문에 독감 백신 생산을 중단해 공급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약 500만 명 가량에 달하는 중고생들을 무료 접종 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에 이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에 독감까지 유행하는 ‘트윈 데믹' 확산이 우려된다.
20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달 14일부터 생후 6개월 이상의 영유아와 임산부에 대한 독감 백신 접종을 시작했고, 이달부터는 65세 이상 고령층에 대한 접종을 본격화했다. 올해 정부에서 목표한 접종 인원은 65세 이상 고령층 888만 명, 6개월~만 13세 이하 영유아 543만 4,000명, 임신부 27만 3,000명 등 총 1,458만 7,000명이다. 지난해 예방 접종자 수 1,389만 명보다 약 5% 늘었다. 이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5일까지 2,646만 명분의 독감 백신을 출하했다.
하지만 의료현장 곳곳에서는 “독감 백신 물량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장현재 대한개원의협의회 총무부 회장은 “백신 출하량은 지난해 보다 늘었는데 공급은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지난 달부터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 물량을 더 받았지만, 일상 회복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수요가 늘어 백신 물량 부족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올해 독감 백신이 부족한 이유는 국내 독감 백신 생산물량의 30% 가량을 담당하는 SK바이오사이언스가 코로나19 백신 생산을 위해 독감 백신 생산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국내 공급량의 40%을 차지하는 녹십자(006280)가 전년에 비해 생산량을 크게 늘렸지만 줄어든 물량을 모두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독감 백신을 수입해 거래처에 공급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지난해 공급량보다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량이 부족하다 보니 제약사와 병·의원 간 가격협상도 원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격도 오르는 추세다. 독감백신은 정부가 일괄 구매하는 65세 이싱 고령층 물량과 민간 병·의원이 개별 구매(임산부·6개월~만 13세 이하)하는 물량으로 나뉜다. 정부 공급 물량을 제외하고는 병·의원이 개별 협상으로 구매한다. 최근 독감 백신 부족 현상이 나타나자 제약사들은 가격을 높이고 공급시기를 늦추는 추세다. 실제 일부 병·의원들은 예년에 1만 원 내외였던 독감 백신을 1만7,000원에 구매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1,000억 원 가량의 예산을 삭감해 유료 접종 대상이 된 500만 명 가량의 중고생과 62~64세다. 이들은 독감백신을 접종하려면 일반 병원에서 4만~5만원을 내고 접종 받아야 한다. 유료인 만큼 접종률이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독감 환자가 줄었다고 해서 무료 접종 대상을 줄인 것은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며 “아직 코로나19 백신을 맞지 않은 중고생들을 중심으로 트윈 데믹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외 전문가들은 올해 심각한 독감 유행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로셸 왈렌스키(Rochelle Walensky)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은 “지난해 독감 감염 사례가 사상 최저 수준에 도달해 독감에 대한 면역력이 감소됐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코로나19와 독감 백신을 동시에 접종하는 것이 안전하고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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