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가 유럽연합(EU)의 법치주의 통제를 거부하며 연일 충돌하고 있다. EU와 대립하며 ‘폴렉시트(폴란드의 EU 탈퇴)’ 우려를 낳고 있는 인물은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사진) 총리다. 사실 그는 유럽 통합을 지지했던 폴란드의 유능한 경제 전문가다. EU가입준비위원회 부국장을 맡아 협상 당시 재정 분야 등을 총괄했다. 브로츠와프대에서 역사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에서 신용분석, 금융 구조조정 업무 등을 담당했고 폴란드 자호드니WBK 행장까지 지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은행과 거시경제를, 함부르크대에서는 EU경제 통합을 연구해 EU법 책을 쓰기도 했다.
누구보다 EU 가입에 따른 경제적 혜택을 잘 아는 그가 왜 EU에 반기를 든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그는 경제적 이유를 댄다. EU의 경제적 지원으로 급성장했지만 통합 이후 폴란드는 값싼 노동력 공급처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모라비에츠키는 “영국·독일 등 서유럽의 제조 공장 역할을 하는 낮은 인건비 위주의 경제 구조에서 탈피하고 싶다”는 발언을 이어왔다. 이 때문에 그는 보수정당임에도 최저임금을 오는 2023년 최대 78%까지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임금 인상으로 인재 유출을 막고 경제 구조를 바꾸겠다는 의지다. 실제 그는 26세 미만 청년들이 폴란드에 머물도록 소득세를 면제해주는 정책도 펴고 있다.
또 다른 요인은 그가 보수 애국주의자이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는 점이다. 학창 시절 반(反)공산주의 투쟁연대 지도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며 새로운 폴란드를 꿈꿨던 그는 애국심이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폴란드의 사법 개혁이나 성 소수자 배척 정책과 관련한 EU의 비판과 정치 통합 요구가 주권국가인 폴란드의 기반을 흔든다는 입장이다. 특히 성 소수자 배척과 동성애 금지, 낙태 반대 등은 가톨릭 교리의 핵심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직접 만나 난민 유입, 유럽 통합 등 사회문제를 논의할 정도로 가톨릭 전통 가치의 수호를 중시하는 그가 EU의 가치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 집권 여당인 ‘법과정의당(PiS)’ 창당인이자 정치 실세인 야로스와프 카친스키의 영향력으로부터 모라비에츠키가 자유롭지 못한 측면도 크다. 카친스키는 1970년대 폴란드 민주화 운동 이후 정치계의 거물로 떠오른 인물이다. 좌파 엘리트에 대한 불신이 강하고 큰 정부를 지향해왔다. 판사 임명 등의 권한을 정부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사법 개혁을 주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당초 모라비에츠키는 서유럽에서 유학한 당내 온건파로 분류돼 EU와 폴란드의 가교 역할이 기대됐다. 하지만 그가 총리직을 유지하기 위해 반(反)EU 강경파인 카친스키의 노선을 따르는 모양새다.
다만 모라비에츠키의 말대로 폴란드가 섣불리 EU를 탈퇴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 항의가 빗발치는 데다 보조금 등 경제적 실리를 포기하기에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타격이 심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폴란드 정부가 EU와 각을 세우는 것은 보조금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EU에서 성 소수자 배척 등을 이유로 폴란드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줄이자 모라비에츠키가 ‘폴란드가 EU를 탈퇴하면 동유럽의 탈퇴 도미노가 발생할 것’이라며 EU와 사실상 ‘보조금 원상복귀’ 협상을 하려 한다는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