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외교 안보 부처 장관들이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도발을 도발이라 부르지 않고 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21일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가 도발이라는 지적에 대해 “도발은 우리의 영공·영토·영해와 국민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기 때문에 용어를 구별해서 사용한다”며 “(도발이 아니라) 위협으로 보인다”고 반박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국감에서 북한의 SLBM 발사가 ‘전략적 도발이냐’는 질의에 “한반도의 전반적인 안보 상황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를 갖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전략적 도발로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SLBM을 쏜 북한의 의도에 대해 “대화를 탐색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위배되는 도발이다. 정부는 지난달 15일 북한이 열차에서 탄도미사일을 쏘자 “북한의 연속된 미사일 발사 도발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우리의 미사일 전력 증강이 북한의 도발에 대한 확실한 억지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달 25일 담화에서 “도발이라는 막돼먹은 평을 하지 말라”고 위협한 뒤 우리 정부에서 ‘도발’이라는 표현이 사라졌다.
한 달 전만 해도 ‘도발’이었던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갑자기 ‘도발’이 아닌 것으로 바뀐 것은 내년 3월 대선 직전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북한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북한은 21일 SLBM 발사에 대해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주권 행사”라고 강변해 도발을 이어갈 태세다. 북한 SLBM의 위력에 대해 서 장관은 “초보 수준”이라고 했지만 미국 헤리티지재단 보고서는 “한국이 이에 대한 방어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우리의 방어 능력을 벗어난 SLBM 발사를 도발이라고 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북한이 어떤 도발을 해도 단호히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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